ADVERTISEMENT

쇄국축구 포항의 뚝심 … 순혈축구 빌바오의 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포항이 외국인 선수 없이도 승승장구하고 있다. 배천석(왼쪽 둘째)이 지난 2일 아시아축구연맹 챔피언스리그 히로시마와의 원정경기에서 결승골을 넣은 뒤 동료들의 축하를 받고 있다. [히로시마=뉴시스]

프로축구 K리그 클래식 포항 스틸러스는 올 시즌 ‘쇄국축구’로 주목받고 있다. 32명 선수단 전원을 국내 선수로 채웠다.

 직접적인 이유는 돈이다. 글로벌 경제위기의 여파로 모기업 포스코의 지원이 줄면서 인건비 규모를 축소하기로 결정했고, 몸값이 높은 외국인 선수들을 가장 먼저 내보냈다.

 ‘토종 선수들만으로도 성적을 낼 수 있다’는 자신감도 과감한 결정에 영향을 미쳤다. 포항은 K리그 클래식 팀 중 가장 체계적인 유소년 육성 시스템을 갖췄다. 주축 멤버 중 황진성(29)·신광훈(26)·고무열(23)·이명주(23) 등이 포항 산하 유소년팀 출신이다. 토종 선수들은 용병들이 빠진 이후 활기를 되찾았다. ‘누구든 주인공이 될 수 있다’는 인식이 선수단 내부에 퍼졌다.

바스크족 선수만으로 팀을 꾸린 빌바오는 한 번도 2부리그로 강등되지 않았다. 빌바오 선수들이 지난해 4월 유로파리그 준결승 2차전에서 스포르팅(포르투갈)을 꺾은 뒤 환호하고 있다. [빌바오=게티이미지]

 포항은 ‘용병 없이는 힘들 것’이라는 주위의 우려를 비웃기라도 하듯, 시즌 초반 순항하고 있다. K리그 클래식에서 3승1무로 선두에 올랐고, 아시아축구연맹(AFC) 챔피언스리그 조별리그에서도 1승2무로 분요드코르(우즈베키스탄)에 골득실 차 2위다. 팬들은 포항의 특이한 도전을 ‘쇄국축구’로, 황선홍(45) 포항 감독을 구한말 쇄국정책의 주인공 흥선대원군에 빗대 ‘황선대원군’으로 부른다. 포항의 새로운 도전은 스페인 프리메라리가 명문 아틀레틱 빌바오의 ‘순혈축구’와 맥을 같이한다.

 스페인 북부 바스크 지방을 연고로 하는 빌바오의 ‘마이 웨이’는 115년 역사를 자랑한다. 1898년 창단 이후 바스크족의 피를 물려받은 이들만 선수로 뽑는 전통을 지켜왔다. 그러면서도 뛰어난 경기력을 유지했다. 빌바오는 스페인 클럽 중 FC 바르셀로나, 레알 마드리드와 함께 100년 넘는 세월 동안 한 번도 2부 리그로 강등된 적이 없는 세 팀 중 하나다.

비결은 민족의식이 가미된 끈끈한 팀워크에 있다. 바스크인들은 한때 스페인에서 분리 독립을 원했을 정도로 혈통에 대한 자부심이 강하다. 빌바오는 선수 발굴과 기용 폭이 좁은 약점에도 불구하고, 팀워크를 앞세워 꾸준히 스페인 1부 리그에서 살아남았다.

 하지만 포항의 ‘쇄국’과 빌바오의 ‘순혈’이 오래갈 것으로 보는 전문가들은 많지 않다. 포항의 쇄국축구는 일시적인 현상에 가깝다. 황선홍 포항 감독은 “새로운 팀 운영 컨셉트라기보다는 일시적으로 발생한 안타까운 상황으로 봐야 한다”고 말했다.

 빌바오 또한 ‘안으로부터의 변화’가 진행되고 있다. ‘순수 바스크인이어야 한다’는 창단 초기의 선수 선발 규정은 ‘바스크의 혈통이 조금이라도 섞여 있으면 된다’로 완화됐다. 2008년에 앙골라인 아버지와 바스크 출신 어머니 사이에서 난 호나스 라마호(19)가 흑인 선수로는 최초로 빌바오 유니폼을 입고 뛰었다. 2010년에는 ‘빌바오 산하 유소년팀에서 3년 이상 뛴 경우 외국인 선수도 1군 무대를 밟을 수 있다’는 규정이 생겼다.

 빌바오 유소년팀에 국내 유망주 13명을 유학 보낸 김영진 코리아 EMG 대표는 “최근 들어 빌바오도 ‘혈통’보다 ‘바스크 정신’에 초점을 맞추는 쪽으로 분위기를 바꾸고 있다”면서 “머지않아 빌바오 유니폼을 입고 뛰는 한국인들을 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송지훈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