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비즈 칼럼

벤처 창업 지원, 융자 아닌 투자로 바꿔야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경제 10면

안병익
씨온(SeeOn) 대표

1999년 다보스 세계경제포럼에서 빌 게이츠 마이크로소프트 회장이 인터넷 거품에 대한 질문을 받았다. 그의 답은 “인터넷 버블이 존재하는 것은 맞지만 그러한 거품현상으로 인터넷 산업에 많은 자금이 유입됐고, 혁신이 더 빠르게 일어날 수 있도록 촉진하고 있다”는 거였다. 모든 사람이 버블을 비판할 때 당대 최고의 창업가는 긍정적인 측면을 보았던 것이다. 한국에서도 외환위기 이후 조성된 정보기술(IT) 붐에 거품이 있었던 게 사실이다.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경제에 활력을 불어넣어 조기에 위기를 극복하고 IT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는 계기가 됐다는 것이 다수 학자들의 견해다.

 물론 거품현상이 옳다는 것은 아니다. 투자자들은 많은 손실을 입게 되고, 많은 일자리가 사라지는 심각한 사회문제가 되기도 한다. 중요한 것은 이러한 문제점을 극복하는 제도적 장치를 마련하고, 거품현상의 긍정적 요소를 살리는 것이다.

 박근혜 정부의 창조경제 성공을 위해 우선 신생 벤처기업 지원을 강화하는 것이 시급하다. 신생 벤처기업은 많은 일자리를 창출하고, 국가 경제성장의 동력이 되기 때문이다. 흔히 벤처기업 창업 후 초기 3년간을 ‘죽음의 계곡’이라고 부른다. 창업기업에 대한 투자를 기피하는 현상에서 온 말이다. 따라서 현재 정부가 모태펀드를 확대하고 에인절투자매칭펀드, 창업초기전용펀드 등 창업 초기 단계 기업을 지원하기 위한 다양한 방안을 구상하고 있는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다.

 여기에서 더 나아가 될성부른 나무를 일찍 알아보고 이를 재목으로 키울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해야 한다. 먼저 창업기업 자금 지원 심사의 전문성을 높여야 한다. 그동안의 심사 과정은 주먹구구식이어서 옥석을 가리기가 쉽지 않았다. 이 때문에 정부 예산이 투입된 기업은 민간 벤처 투자를 받은 기업보다 기업공개(IPO) 비율이 낮고 벤처 인증 후 5년간 매출액 증가 역시 떨어진다. 대학 교수 및 공무원 중심의 평가보다 실제 창업 경험이 있는 실무 전문가 중심으로 평가 시스템을 개선해야 한다.

 자금의 성격도 융자 중심에서 투자 성격으로 바뀌어야 한다. 융자는 사후 관리도 어렵고 창업자의 연대책임도 물어야 해 한 번 실패하면 재기하기가 어렵다. 엄격한 심사를 거쳐 현장 전문가의 멘토링 시스템을 구축하면 도덕적 해이를 막고 실패율을 낮출 수 있을 것이다.

 대기업의 역할도 중요하다. 최근 다수의 대기업들이 상생펀드, 동반성장펀드를 조성하고 있지만 이 역시 투자보다 융자 중심이다. 협력업체 지원도 기술력이 이미 검증된 기업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 대기업이 유망한 신생 기업에 투자하고 제값에 인수하는 관행이 확산된다면 많은 우수한 청년들이 실패에 대한 부담을 덜어 창업에 도전할 수 있게 될 것이다. 신경제 패러다임인 창조경제 목표 달성을 위해 신생 벤처기업을 육성하려는 정부의 체계적인 정책과 이를 뒷받침하는 대기업의 지원이 그 어느 때보다 절실하다.

안병익 씨온(SeeOn)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