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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참에 차라리 아파트 처분할까” 수퍼리치들 시큰둥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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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일러스트=차준홍 기자

서울 강남에 중소형 빌딩 세 채를 보유한 이모(55)씨는 정부의 부동산대책에 기대를 걸었다. 자산의 70~80%가 부동산에 몰려 있지만 시장의 장기 침체로 제대로 수익을 내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그는 정부의 부동산대책 내용을 보고 실망감을 감추지 못했다. 그는 “부동산에 많은 자금이 묶여 있어 정부의 적극적인 대책을 기대했다”며 “정책의 초점이 아파트에만 집중돼 있어 효과를 기대하기 어렵게 됐다”고 말했다.

 4·1 부동산대책은 한국의 ‘수퍼리치(금융자산 10억원 이상을 보유)’에겐 남의 일이다. 이들은 주로 빌딩·상가 등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번 대책이 주로 중산층·서민과 아파트에 초점을 맞추고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같은 수퍼리치라도 입장에 따라 반응이 조금씩 달랐다. “실망했다”거나 “관심 없다”며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기도 하고, 이번 대책으로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되찾으면 보유 자산가치도 오르지 않을까 촉각을 곤두세우기도 했다. 또 이 기회에 결혼하지 않은 자녀에게 아파트를 마련해 줘 양도소득세를 면제받게 해 줄 구상을 하고 있는 수퍼리치도 있었다.

 안원걸(43) 신한PWM 프리빌리지 강남센터 부지점장은 1일 정부가 부동산대책을 발표한 뒤로 고객으로부터 부동산 관련 문의를 한 건도 받지 못했다. 신한PWM 프리빌리지는 고액 자산가를 고객으로 하는 신한은행의 프라이빗뱅킹(PB) 센터다. 안 부지점장은 “이번 대책에 대형 아파트가 제외돼 고액 자산가는 관심이 없는 것 같다”며 “고객이 이번 기회에 부동산을 구입해야겠다는 움직임을 보이지 않고 있다”고 말했다.

 안 부지점장은 “고액 자산가는 월수입이 고정적으로 나오는 서울 강남 지역의 빌딩에 관심이 많다”며 “아파트는 여러 채 사봤자 관리도 어렵고 상대적으로 수입도 좋지 않아 크게 관심을 두지 않는다”고 전했다. 서울 강남에 위치한 주요 은행의 PB센터는 대부분 이와 비슷한 분위기였다. 한 은행의 PB센터장은 “전반적으로 시큰둥한 반응”이라고 말했다. 이런 반응과 달리 이번 대책으로 일차적 혜택은 없지만 부동산 시장이 활기를 띠게 되면 보유 부동산의 가치가 오르지 않을까 기대하는 자산가도 많았다. 시장이 활기를 띠면 보유 자산을 팔기 수월해질 것이라는 판단에서다. 서울 강남에 대형 아파트 세 채를 보유한 정모(63)씨가 대표적이다. 정씨는 “그동안 아파트 값이 떨어져 매각할 시기를 잡지 못했다”며 “이번 대책으로 아파트 값이 오르면 일부 부동산을 팔 계획”이라고 말했다.

 삼성생명의 PB센터인 삼성패밀리오피스의 정봉진 과장은 “부유층 입장에선 이번 조치가 와 닿지 않지만 정부가 부동산 시장을 살리기 위한 각종 조치를 취할 것이라는 시그널을 줬다는 점에서 긍정적”이라며 “현재 부유층이 보유하고 있는 부동산을 처분할 시기를 저울질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는 그러나 “이번 대책으로 부유층이 부동산을 적극적으로 사려는 움직임을 보이지는 않는다”고 덧붙였다.

 양도소득세 면제 혜택을 주는 점을 활용해 이번 기회에 미혼 자녀에게 소형 아파트를 사주려는 움직임도 나타나고 있다. KB국민은행 대치PB센터의 신동일 PB팀장은 “고객으로부터 부동산 관련 문의는 많지 않다”면서도 “85㎡ 이하 9억원 이하 주택에 대한 양도세 5년간 전액 면제 제도를 활용해 자녀에게 강남의 소형 아파트를 사주려는 자산가도 있다”고 말했다. 강남의 재건축단지인 개포주공4단지의 전용 50㎡형 실거래 가격은 7억5000만원 선이다.

 우리은행 WM전략부 안명숙 팀장은 “금융소득종합과세 대상이 지난해 금융소득 4000만원에서 올해는 2000만원으로 강화돼 부동산에 관심을 갖는 자산가도 많다”며 “금융 여력이 5억~10억원대인 자산가는 수익성 측면에서 오피스텔 2~3채에 투자하는 것보다는 소형 아파트에 투자하는 게 나을 것”이라고 말했다. 안 팀장은 또 “이번 대책으로 부동산 거래비용이 크게 줄어 실수요자는 늘어날 것”이라며 “가격은 약간 반등할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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