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양해 없는 내 사진 『명예훼손』이다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사진 주인공의 사전 양해 없이 그 사진을 관광용 원색 그림엽서의 소재로 이용, 판매한 사람을 처벌해 달라는 색다른 고소 사건이 28일 서울 중부 경찰서에 날아들었다. 제소자는 『가난하나 자존심을 버리고 산 적이 없다.』는 농부 정인화( 43·서울 서대문구 연희동 산 5의 15) 씨... 피소자는 그림엽서를 펴낸 현대 「컬러」현상소(서울 중구 충무로 1가 태평양 「빌딩」)의 대표 장남수씨로 「명예훼손」혐의다.
65년 10월 하순 정씨는 집 앞 논에서 추수하고 있었다. 청년 3명이 정씨의 사진을 찍겠다고 했다. 『안된다.』고 했다. 하도 끈질기게 「포즈」를 취해 달라고 하여 정씨는 그저 무심히 「포즈」를 취해줬다. 그리고도 꺼림칙하여 『무엇에 쓰느냐.』고 따져 물었다. 청년들은 『야외에 나왔다가 취미 삼아 찍은 것이니 염려말라.』고 했고 『딴 곳엔 절대로 쓰지 않겠다.』고 다짐했다. 사진이 잘 됐으면 한 장 보내 주겠다고 집 주소까지 적어 갔다.
작년 「크리스머스」때 정씨네 셋째 딸 연란(13·C국민교 5년) 양이 친구에게서 받은 「카드」 한 장을 아버지 앞에 내동댕이 치며 울음을 터뜨렸다. 정씨는 그 「카드」를 보고 깜짝 놀랐다. 그 엽서엔 『풍년을 기뻐하는 쌀의 나라 한국 농부』라는 「캡션」으로 탐스럽게 영근 볏단을 든 자기의 모습이 실려있는 것이 아닌가?
그래서 화가 치민 정씨는 그 청년들을 찾다 못 찾고 그림 엽서를 낸 「현대」를 명예훼손으로 제소하기에 이른 것.
피소된「현대」측은 이 사진이 파산한 계림양행(대표 정계림)에서 채권 관계로 이양받은 52종의 원판 속에 들어 있던 것으로 「현대」측엔 책임이 없다고 주장하고 있다. 현재 정계림씨는 행방불명 중. 이 엽서는 「현대」의 한 관계자의 말대로 66년 9월부터 인쇄되어 1장에 10원씩 국내외로 수없이 팔려 나갔다고 한다.
연세대 뒤산 중턱 7평짜리 초가에서 3백평의 논과 5백평의 밭을 갈며 사는 정씨는 S상업학교를 3년 중퇴하고 15년 동안 농사를 지어 왔으나 소신을 굽힐 줄 모르는 사람. 이 사건은 민사소송을 벌일 수도 있으나 돈 받을 욕심이 없어 민사로는 하지 않겠다는, 정씨는 형사 사건으로만 해결하겠다고 굽힐 줄 모른다. 사건을 맡은 중부서의 한 간부는 이 같은 사실에 대하여 처벌의 필요성은 인정하면서도 워낙 사건이 미묘해 어떻게 해야 될지 골치가 징징 아프다고 비명(?)을 올리고. <주>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