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탄광촌 아이들에게 꿈 찾아준 ‘뮤지컬 마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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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3면

강원도의 한 탄광촌. 고교 중퇴생 태수가 이끄는 학생 폭력조직 ‘철조망’이 놀이터를 습격한다. 쫓겨난 학생들은 “힘으로 맞서자”며 ‘뺀지’라는 조직을 만든다. 패싸움이 벌어지자 학교는 학생들에게 ‘아버지 일터인 탄광 막장을 체험하라’는 벌칙을 준다. 체험 도중 갱도가 무너지는 사고가 나고 학생들은 생사의 갈림길에서 부모의 고마움을 깨닫는다. 극적으로 구출된 아이들은 노래와 춤으로 행복한 졸업식을 맞는다.

 뮤지컬 ‘뺀지와 철조망’의 줄거리다. 배우 30명, 노래 22곡, 공연시간 80분의 이 뮤지컬을 만든 이들은 강원도 삼척시 도계읍의 도계고 교사와 학생들이다. 도계고는 전교생 250명의 미니학교다. 석탄산업이 호황일 때 5만 명에 달했던 이 지역 인구가 1만3000명으로 쪼그라들면서 학교도 같은 처지가 됐다. 쇠락한 탄광촌에서 적잖은 아이들이 꿈을 잃고 방황했다.

지난 2010년 서울 광진구 나루아트센터에서 삼척시 도계고 학생들이 자신들이 만든 뮤지컬 ‘뺀지와 철조망’을 공연하고 있다. 교육부는 올해 130개 학교의 뮤지컬 활동을 지원한다. [사진 도계고]

 2006년 전인국(67) 당시 교장이 뮤지컬 동아리를 제안했다. 공부보단 TV 속 가수들의 춤과 노래에 끌리는 학생들에게 “차라리 춤과 노래를 마음껏 하도록 해주자”는 생각에서였다. 전문가들의 도움을 받아 교사·학생이 노래를 만들고 안무를 짜고 배역을 맡았다. 그해 말 동네 교회에서 첫 공연을 했다. 뮤지컬은 학교 분위기를 바꿨다. 학교 주변에 담배꽁초가 사라졌다. 수업이 끝나면 방황하던 학생들이 일주일에 두세 번 오후 9시30분까지 연습에 몰두했다. 3학년 김병현(18·주인공 고영재 역)군은 “갱도 사고가 나는 장면을 연기할 땐 광부인 아빠 생각이 나 뭉클해진다”고 말했다. 김창규(56) 교장은 “아이들이 스트레스를 풀 곳이 생기면서 친구 관계, 수업 분위기 모두 부드러워졌다”고 했다. 도계고의 뮤지컬은 2008년 삼척시 문화관광상품으로 지정됐다. 2010년 두 차례 서울 공연은 전 좌석이 매진됐다.

 도계고처럼 뮤지컬을 통해 학생 인성 함양에 나서는 학교가 늘어난다. 교육부는 올해 전국 초·중·고 130곳을 선정해 학생 뮤지컬을 지원한다고 2일 밝혔다. 유은종 인성체육예술교육과장은 “음악·무용·연기가 결합된 통합 예술인 뮤지컬을 통해 학생들이 상호 소통과 이해, 협동심을 기를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선정된 학교들은 교내외 뮤지컬 공연을 위해 3년간 총 3000만원을 지원받는다. 돈만이 아니다. 뮤지컬 ‘내 마음의 풍금’을 제작한 김종헌 PD 등 성신여대 교수들로 구성된 ‘학생뮤지컬 사업단’이 현장에서 공연 지도도 해준다.

 교육부는 학생 오케스트라에 대한 지원도 확대한다. 지난해까지 지원하던 300곳 외에 올해 100곳을 추가 지원한다. 올해부터는 서울대 음대(학장 김영률)가 교수·재학생으로 구성된 멘토단을 보내 특강을 진행한다.

 교육부의 학생 뮤지컬·오케스트라 지원은 음악 단체활동이 학생의 사회성 등 인성교육에 크게 도움이 된다는 판단에서다. 지난해 부산교대 양종모 교수가 합창·오케스트라·밴드·뮤지컬 참여 학생과 이들의 학부모 454명을 설문한 결과 84%가 ‘전보다 함께 하는 일에 열심히 참여하게 됐다’고 답했다.

 국내 학생 음악 단체활동은 2008년 영화 등을 통해 베네수엘라의 빈곤층 아동 음악 프로그램 ‘엘 시스테마(El Sistema)’가 소개되면서 활발해졌다. 2010년부터 초록우산어린이재단(회장 이제훈) 등 민간단체들도 소외계층 청소년의 오케스트라 활동을 지원하고 있다. 교육부는 미술·음악·공연·영상 분야의 학생 예술 동아리 500곳도 지원한다. 

천인성·이한길 기자

◆엘 시스테마=1975년 베네수엘라의 경제학자이자 음악가인 호세 안토니오 아브레우 박사가 빈민가 차고에서 청소년 11명의 단원으로 오케스트라를 만들면서 시작됐다. 마약과 폭력 등에 노출된 빈민가 아이들에게 음악을 가르쳐 책임감과 꿈을 길러주는 프로젝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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