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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9세 카터 중단 없는 ‘AS 정치’… 이번엔 네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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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6면

미국의 39대 대통령 지미 카터에겐 두 개의 별명이 따라 다닌다. 최악의 미국 대통령, 그리고 가장 훌륭한 퇴임 대통령이란 별명이다.

 미국의 저널리스트 톰 플레이트는 카터 전 대통령 재임 당시를 “그는 신을 두려워하는 평범한 사람에 불과했다”고 혹평했다. 인권이나 도덕만 앞세워 이상주의 외교에 매달리다 소련의 아프가니스탄 침공을 초래하고, 이란의 미국대사관 인질 사건 때 결단의 시기를 놓쳐 실패했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카터 전 대통령의 퇴임 후 활동은 딴판이다.

 무주택 서민을 위한 사랑의 집 짓기 운동(해비타트)을 전 세계에 전파하고, 자원봉사로 운영되는 초당적 비영리기구 ‘카터 센터’를 만들어 지구촌 분쟁 종식과 민주주의 확산 운동을 전개해 2002년 노벨평화상을 받았다. 2007년엔 전자서적 『미국의 도덕 위기』로 그래미상까지 수상했다.

 그런 카터 전 대통령의 ‘애프터서비스(AS) 정치’는 지금도 현재 진행형으로 계속되고 있다. 1924년생, 한국 나이로 90세인 카터 전 대통령은 1일(현지시간) 네팔의 수도 카트만두에 머물고 있다. 선거를 감시해 달라는 요청을 네팔 지도자들로부터 받았기 때문이다.

카터 전 대통령은 네팔의 정부 관료와 정치 지도자들을 만나 민주적인 선거를 치러야 한다고 독려하고 있는 중이다. 그는 1일 네팔 정부에 “티베트 난민 유입을 저지하라는 중국의 압력에 굴복하지 말라”고도 촉구했다. 네팔에는 2만 명의 티베트 난민이 거주하고 있는데 네팔 정부는 난민들의 반중국 활동을 금지하고 있다. 폭스뉴스 등 미 언론들은 이런 카터 전 대통령의 활동을 주요 뉴스로 전했다. 네팔은 왕정을 폐기하고 공화정을 도입해 2008년 제헌의회를 구성했다. 그러나 정국 혼란으로 헌법조차 마련하지 못한 채 지난해 5월 의원들의 임기가 끝나 올해 총선을 치를 예정이다. ‘카터 센터’는 2008년 제헌의회를 구성하기 위한 네팔 총선을 감시해준 인연이 있다.

 카터 전 대통령은 지난해에도 부인 로절린 여사, 500여 명의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홀연히 아이티에 나타났다. 2010년 지진 피해를 본 아이티에선 수많은 난민들이 고통을 겪고 있었다. 백발이 성성한 채 청바지 차림으로 사랑의 집 짓기 행사를 하는 카터 전 대통령의 솔선수범에 세계 각국은 지진피해 구호금 출연으로 호응했다.

 지난해 말 청와대 참모들은 퇴임 이후를 준비하는 이명박 대통령에게 이런 카터의 모습을 롤모델로 추천하기도 했다.

 물론 카터 전 대통령에겐 ‘최악의 대통령’이란 상처가 늘 꼬리표로 따라다닌다. 지난해 미국 대선 당시 밋 롬니 공화당 후보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 비판하던 중 “차라리 카터가 낫다”고 말해 가만히 있는 카터 전 대통령의 심기를 건드렸다.

 하지만 카터는 전 세계를 무대로 한 왕성한 활동으로 이런 비판을 불식하고 있다. 2002년 노벨평화상을 수상한 뒤 그는 “하나님이 나를 미국 대통령에 당선시킨 건 대통령을 마친 다음에 시키고 싶은 일이 있어서”라며 “그건 바로 봉사활동”이라고 말했다.

워싱턴=박승희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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