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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코노미스트]은행장들의 스톡옵션 운일까 능력일까

중앙일보

입력

최근 경기회복에 대한 기대가 높아지면서 은행주 주가가 급상승하면서, 김정태(국민)·김상훈(국민 이사회 의장)·김승유(하나)·라응찬(신한지주 회장)·이인호(신한)·하영구(한미)·위성복(조흥)·김경림(외환)은행장 등 여러 은행 수장들이 수십억 내지 2백억 이상의 스톡옵션 ‘대박’을 맞을 조짐을 보이고 있다. 특히 김정태 행장은 스톡옵션 하나로 한국에서 손꼽는 부자 중 하나로까지 등장할 전망이다.

이에 따라 유독 은행장들만 대박을 맞는 게 이상한 건 아닌지, 따라서 은행장들의 스톡옵션 설계가 과연 제대로 된 것인지 등에 대한 의구심이 일고 있다.

이러한 문제들에 대한 진단을 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먼저 스톡옵션에 대한 정확한 이해가 있어야 한다. 대부분 은행이나 기업의 경우 스톡옵션에 대한 피상적인 이해만 하고 있다. 때문에 스톡옵션을 도입함으로써 발생될 수 있는 ‘폐해’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경우가 허다하다.

스톡옵션이란 어떤 직장인이 미래의 일정한 시점 이후부터 자신의 직장의 주식을 미리 정한 가격에 살 수 있도록 하는 제도이다. 언뜻 보면 구조는 간단한 것 같기도 하다. 하지만 스톡옵션을 성공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일견 당연하게 보일 수도 있는 다음과 같은 점들을 잘 알고 있어야 한다. 또 이를 현실에 반영해야만 한다.

첫째, 스톡옵션은 기업의 보상제도의 일종이다. 두말할 것도 없이, 기업은 보상제도를 통하여 훌륭한 인력을 확보하고 생산성을 높여 그 발전을 도모하고 있다. 그러한 목적을 달성할 수 없다면 새로운 보상제도인 스톡옵션을 도입하여 실시할 이유가 없다.

우리나라 기업들의 스톡옵션 도입 양상을 보면 조금 이해가 안 되는 부분이 있다. 주가가 낮아서 스톡옵션의 가치가 낮을 때에는 거의 모든 기업이 스톡옵션 도입에 관심이 없다. 그러나 주가가 조금 오르기 시작하면 너도나도 서둘러 스톡옵션을 도입하곤 한다.

그러다 보니 스톡옵션 제도가 자신의 기업에 좋은지 나쁜지에 대한 깊은 검토도 없이 도입하곤 한다. 그래서 오히려 스톡옵션이 기업에 좋지 않은 영향을 미치는 경우도 있다.

둘째, 스톡옵션은 성과급 제도이다. 따라서, 스톡옵션이 효과를 발휘하려면 기업 환경이 경영자로 하여금 마음껏 역량을 발휘할 수 있도록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런데 ‘역량을 발휘할 수 없는 기업환경’이라면 얘기가 달라진다. 가령 정부의 규제가 너무 많아서 경영자의 경영능력이 거의 필요치 않은 조직이나 기업이라고 치자. 이러한 조직이나 기업의 경우 스톡옵션을 도입하나 안 하나 차이가 없을 것이다. 은행이 바로 그런 대표적인 예다. 일반 대중을 상대하기 때문에 나라마다 정도의 차이는 있으나 제조업체에 비해 규제가 심한 편이다.

따라서 다른 조건이 동일하다면 은행의 스톡옵션 도입은 제조업체에 비해 효과가 덜할 수 있다. 그러나 우리나라의 경우 금융권의 쇄신이 요구되는 상황이기에 스톡옵션은 상당한 영향을 미칠 것으로 기대할 수 있다.

셋째, 스톡옵션은 주식에 근거한 보상이다. 따라서 주가가 기업의 상황을 정확하게 반영하지 못하는 비효율적인 시장에서는 그 의미가 없다.

가령 경영진이 자신이 받을 스톡옵션 보상을 높이기 위해 주가를 조작할 수 있다면 스톡옵션 도입은 전혀 무의미하다. 상황을 오히려 악화시킬 뿐이다. 만약 한국의 주식시장이 이와 같다면 은행장들의 거액보상은 문제가 심각하다. 일부에서 주장하는 바와 같이 공적자금을 투입하여 회복되는 은행의 성과를 일부 경영진이 가로채고 있다는 점은 일리가 있다.

그러나 이 문제는 좀더 냉철하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그 이유는 이렇다. 이 문제가 자본시장의 건전성과 연과된다는 점뿐만 아니라 스톡옵션이 다음에서 설명하는 사전적 보상이라는 점 등과 긴밀히 관련되어 있기 때문이다.

넷째, 스톡옵션은 사전적 보상이다. 즉, 이미 실현된 주가에 근거하여 보상을 하는 것이 아니고 앞으로 기업의 주가가 일정한 가격 이상이 되어야 보상을 받을 수 있다는 말이다. 따라서 일부에서 “은행들이 주가가 낮을 때 스톡옵션을 부여하여, 은행장들이 주가 상승으로 말미암아 엄청난 이익을 보고 있다”고 주장하는 것은 너무 지나친 감이 있다.

스톡옵션을 부여하는 시점에서 누가 감히 주가를 예측할 수 있겠는가? 특히 요즘은 인터넷을 통해 정보가 빨리 유포되는 상황 아닌가. 한 개인이나 조직이 정보의 우위를 오래 점유할 수 있겠는가? 나중에 보면, 마치 주가가 낮을 때 스톡옵션이 부여된 것으로 보이지만, 그것을 부여할 당시에는 주가가 어디로 움직일지 모른다. 따라서 그런 주장은 근거가 약하다.

또한 아무리 공적자금이 많이 투입되었다 해도 스톡옵션의 도입이 그 후에 이루어졌다면 얘기가 달라진다. 그리고 자본시장에서 주가가 효율적으로 형성된다면 공적자금 투입으로 인한 과실을 은행경영진들이 과다하게 차지한다는 주장도 논리적 근거가 희박하다. 왜냐하면 스톡옵션이 부여되는 시점의 주가는, 이미 공적자금이 투입되었다는 사실을 반영한 것이기 떄문이다. 공적자금 투입 이후의 성과는 누구도 장담할 수 없기 때문이다.

다섯째, 스톡옵션은 매우 유연한 보상제도이다. 현재 이같은 ‘과다한 보상’ 문제들이 발생한 것은 스톡옵션의 유연성을 활용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특히 은행장들에 대한 ‘과다한 보상’은 행사가격을 너무 경직적으로 설정했기 때문에 발생했다.

대부분의 스톡옵션 도입 기업을 보면, 행사가격이 증권거래법에 정해져 있는 대로, 최근 2월·1월, 1주간의 종가를 거래량으로 가중한 평균가격으로 정하고 있다. 그러나 기업주가의 움직임은 기업 경영자의 노력 여하뿐만이 아니라 기업 외적인 수많은 요인에 의해 영향을 받는다. 딘적으로 미국 테러가 발생하던 9월11일 당시 한국을 비롯한 전세계 증시가 대폭락을 맞이하지 않았던가.

따라서 어느 기업이나 은행의 주가가 고정된 스톡옵션 행사가격 이상으로 뛰어올랐다고 해서, 그 특정한 경영진 자신이 매우 탁월했기 때문이라고 단순하게 판단하는 것은 무리다. 은행가에서 “김정태 국민은행장은 단지 운이 좋은 사람일 뿐이다. 그는, 마침 은행 기업환경이 좋아지기 시작했을 때, 은행장이 되었을 뿐이다”라는 평을 내리는 것도 여기서 비롯된다.

이러한 문제점을 해결하기 위해서는 스톡옵션의 행사가격을 변동시켜야 한다. ‘변동’시키는 방법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첫째, 행사가격을 일정 비율로 증가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어, 경영자가 별다른 능력이 없다고 가정해 보자. 그렇다고 하더라도 기업의 자산을 은행에 예치할 능력은 있을 것이다. 때문에 기업(은행)의 가치는 최소한 은행 이자율 정도로는 증가해야 한다. 가만히 있어도 은행이자율은 누구나 받을 수 있기 때문이다.

따라서 스톡옵션 행사가격을 은행이자율에 맞추어 증가시키는 방안을 생각할 수 있다. 이론적으로 보면, 기업의 위험을 감안한 요구수익률을 사용하여 행사가격을 조정하는 것이 타당하다.

둘째, 경쟁 기업들의 평균 성과를 먼저 구하고, 이에 근거하여 행사가격을 산출하는 것이다. 이렇게 하면, 경영자들이 노력과 관계 없는 외부요인에 의하여 은행주 주가가 뛰고, 이 급등한 주가 덕분에 은행장들이 앉아서 상당액의 보상을 받는 불합리한 경우를 없앨 수 있다.

참고로, 최근 한국상장회사협의회에서 스톡옵션 표준 모델 제정 위원회를 구성하여 표준모델을 제시한 적이 있다. 그런데 중요한 부분이 바로 상대성과에 근거한 방법이란 점이다. 스톡옵션을 도입하려는 많은 기업들이 참고할 만한 내용이다.

그리고 행정당국도 스톡옵션에 대한 규제를 강화하기보다는 이러한 부분을 지원할 수 있도록 관련 규정을 손질해야 한다.

결론적으로 보면, 현재 고액 보상을 받게 될 은행장들은 부도덕하다기보다는 운이 좋은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다. 법에서 정한 절차를 따라 주주총회의 결의를 거쳐 스톡옵션을 받았기 때문이다.

다만, 해당 은행 내의 스톡옵션 제도 구성이 미숙했었을 수 있고, 또는 알면서도 고의적으로 상대성과에 근거한 보상 기준을 마련하지 않았을 수도 있다.

이러한 불합리한 가능성을 차단하기 위해서는 기업의 지배구조가 건전하게 확립되어야 한다. 특히 사외이사로 구성된 스톡옵션 보상위원회가 충분한 역할을 해야 한다.

역사적으로 볼 때, 아무리 좋은 제도일지라도 건전한 견제가 없는 경우 결국 힘있는 자들의 힘을 더욱 키워주는 데 그 좋은 제도가 사용되었다는 점을 잊지 말자. 따라서 스톡옵션 제도의 장단점을 잘 파악함과 동시에 건전한 제도 운용에도 힘써야 할 것이다.

출처:이코노미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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