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봄 속의 한기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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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겨울이 오면 봄도 멀지 않으리라고 읊은「쉘리」의 시를 모를 사람은 거의 없다. 짙은 안개, 뼈를 에는 듯 음산한 북서풍이 몇 달을 두고 휘몰아치는 영국의 겨울. 그것은 이를 체험한 사람이 아니고서는 도저히 실감할 수 없을 만큼 무서운 계절의 시련이기도 하다. 「쉘리」는 이런 고통 속에서 오히려 뜨겁게 치솟는 새 희망을 노래하여 만인의 심금을 울리게 하였던 것이다.
그러나 동양인인 우리에게 있어서는 계절을 맞는 감각에 있어서도 이것과는 판이한 면이 많다. 역경 속에서의 희망보다는 오히려 환희 속에서 조락을 보고, 이에 대한 피부적인 불안을 느끼는 편이 더 많지 않을까. 봄을 노래하면서도 항상「춘래불사춘」의 감정에 쫓기다 시피 하는 것이 우리들의 생활감정이다.
대자연에는 이미 봄이 완연하건만, 실상 우리들의 주위를 돌아보면 봄의 환희보다는 그 봄 다음에 올 여름과 가을, 겨울에 대한 불안이 앞서는 것을 어찌할 수 없다, 봄과 더불어 무작정 상경하는 시골 소년·소녀들의 수가 날로 부쩍 늘어만 가고 있다 한다.
서울시 당국이 지난 한 주, 보호소에 수용한 인원만도 2천4백여명이라는 놀라운 숫자. 이들은 새봄에 길거리를 헤매면서「검」팔이·구걸 등으로 그 어린 목숨을 부지하려고 안간힘을 다 쓰다가 당국의 일제단속에 걸려든 것.
시골이 초만원이어서, 그래도 형편이 좀 나은 만원 서울에 올라 온 것이 그들의 처지이다. 충분히 동정은 간다. 그러나 이들이 만원 서울의 세포 속에 섞임으로써 야기될 여름·가을·겨울의 불안을 진정으로 걱정하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기생과 요행을 쫓는 생활 속에서 그들은 언젠가 잠재적 범죄 집단이 되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그들 사이에 성행하는 은어와 사형 등을 통한 철석같은 단결심 등을 통한 철석같은 단결심 등을 보고 있노라면 오뉴월의 열기 속에서 오히려 한기를 느낄 정도.
삭풍 휘몰아치는 겨울 속에서 오히려 희망을 읊는 감회를 갖지는 못할 망정, 적어도 자연의 봄을 맞아 조촐하게나마 봄다운 희망을 누구나가 가질 수 있는 사회환경의 조성이 시급하다. 언제까지나 한국의 봄이 무직 소년·소녀들의 무더기 상경과 이에 뒤이은 범죄의 여름으로 직결되는 계절이 되어서는 아니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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