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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업도 ‘골프 대디’가 필요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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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

“전 세계에서 가장 뛰어난 골프 가문은 김씨와 이씨다.”

 몇 년 전 한국 여성 골퍼들의 활약을 빗대어 서양 골프 기자들이 한 우스갯소리다. 영 틀린 말은 아닌 듯하다. 미국 LPGA 랭킹 100위 안에 김씨와 이씨 성을 가진 한국인 선수가 15명이나 되니 말이다. 세계 무대 진출 시기를 감안하면 한국 여성 골퍼의 활약상은 더 놀랍다. 한국여성프로골프협회(KLPGA)가 미국·일본보다 20년 이상 늦은 1988년 설립됐고, 세계 무대 진출이 본격화한 것도 98년 박세리 선수가 등장하면서부터다. 그 후 15년 만에 김미현·최나연·신지애·박인비 등 세계적인 여성 골퍼가 배출돼 LPGA 신인상을 8명이나 차지했다. 그리고 LPGA 랭킹 100위 안에 38명, 500위 안에 144명의 한국 선수가 포함돼 있다. 이제 한국은 명실공히 여성 골프강국으로 부상했다.

 경제계에 몸담고 있는 필자는 여성 골프의 세계적 위상에 비한다면 우리 기업은 규모나 숫자에서 아직 세계 무대를 주름잡을 정도의 활약상을 보여주지 못하고 있어 안타깝다. 포춘 500대 기업 중 한국 기업은 13개에 불과하다. 이마저도 10여 년 동안 제자리걸음이다. 특히 우리 경제가 저성장 시대에 들어서고 있어 단기간에 세계적 기업이 나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따라서 새로운 아이디어와 기술을 활용한 창업을 활성화하고 세계적인 강소기업을 집중 육성해 나가는 것이 절실하다. 이런 점에서 단기간에 세계 무대를 평정한 한국 여성 골프계의 놀라운 성장 비결에서 창업 활성화와 강소기업 육성이라는 시대적 과제에 대한 해법을 찾아볼 수 있을 것이다.

 먼저 공정하고 엄정한 룰이 적용돼야 한다. 짧은 시간 동안 골프강국이 될 수 있었던 가장 큰 이유는 분명 선수들의 열정과 노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우승 상금, 홀인원 부상과 같이 골프가 가져다주는 보상이 동기 부여가 된 측면이 있다. 그러나 경미한 룰 위반에도 누구에게나 엄격한 규칙을 적용하는 게임 문화가 선수들에게 누구든지 실력으로 성공할 수 있다는 믿음을 주고 더 많은 노력과 도전을 이끌어낼 수 있었다고 본다. 이처럼 공정한 경쟁이 가능한 거래문화를 만들어준다면 우리 중소기업도 열심히 일한 만큼 얻을 수 있다는 생각으로 경쟁력 강화에 노력하고 새로운 사업에 과감하게 도전할 수 있을 것이다.

 아낌없는 투자와 지원이 필요하다. 한국 여성 골프는 ‘골프 대디’라는 한국만의 특별한 성공 요인이 있다. 부모의 집중적인 투자와 집념, 그리고 희생이 여성 골퍼를 성공으로 이끌었다. 후원 기업의 존재도 물질적·정신적으로 안정감을 주는 밑거름이 됐다. 정부는 세계적인 경쟁력을 갖춘 중소·중견기업 육성을 위한 월드클래스300 프로젝트, 강소기업 육성 사업 등을 추진하고 있다. 하지만 많은 기업이 자금·기술·인력과 판로 개척에서 어려움을 겪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정부는 골프 대디이자 후원자로서 연구개발(R&D), 인력 확보, 국제화 등을 위한 지원을 더 강화해야 한다. 기업경쟁력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세제·규제·노동 제도를 개선해 기업이 경제활동에 전념할 수 있도록 해줘야 한다.

 격려와 관심도 필요하다. 선수들이 좋은 성적을 내고 유망주들이 끊임없이 나오고 있는 것은 팬들의 성원과 관심이 있었기 때문이다. 대중의 관심이 늘면서 골프에 대한 부정적 인식도 바뀌었다. 또 기업의 스폰서십이 늘고 골프연습장과 스크린 골프장 등 관련 시설이 급증하면서 한국 여자 골프 발전이 더 가속화될 수 있었다. 반면 기업환경은 불확실성 확대, 치열한 경쟁, 사업 기회 부족 등으로 기업가 정신이 약화하고 있다. 기업가 정신을 근간으로 기업활동이 활발해져야 강력한 리더십과 혁신을 통한 강소기업도 늘어날 수 있다. 기업을 격려하는 사회적 분위기도 만들어져야 한다.

 한국 여성 골프의 성공에는 박세리라는 롤모델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 박 선수의 성공은 다른 선수들에게 큰 자극이 되었다. 무엇보다 중요한 의미는 스타 한 명으로 끝나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스타 선수 배출로 이어지고 있다는 것이다. 경제계에서도 대중들에게 잘 알려지지 않은 강소기업을 하나씩 육성해 우리 경제의 새로운 부흥을 가져오기를 기대한다.

이동근 대한상공회의소 상근부회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