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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카르노」의 종말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2면

「수카르노」 대통령의 정치적 생명은 12일 「인도네시아」의 최고권력기관인 국민협의회의 결의와 더불어 명실공히 종말을 고하게 되었다.
지난 20여년 동안 「수카르노」는 「인도네시아」의 「위대한 혁명지도자」 「국부」 또는 「국군최고사령관」 등 여러 가지 칭호를 받았다. 그러나 「수카르노」 대통령은 오늘날 모든 권력이 박탈되어 쓸쓸하게 물러나게 되었다. 그가 비운을 당하게 된 자초지종의 경위는 특히 후진국의 비정상적인 위정자들에게 좋은 전감이 된다고 보아 불가할 것은 없을 것이다.
「수카르노」 대통령은 분명히 독립투사로서 화란으로부터 독립을 쟁취하는데 성공한 공이 있었다. 또 그의 정치적 경륜과 타고난 웅변술은 「인도네시아」 민족의식의 각성제가 되었고 그 자신을 「카리스마」적인 영도자로 만들기에 이르렀다.
그러나 그는 후반기에 접어들면서 중대한 과오를 범하였다. 첫째로 그는 모순된 정치철학에 빠졌다. 이른바 「나사콤」체제라고 하여 민족주의·종교·공산주의가 공존할 수 있다고 본 것이 바로 그것이었다. 궁극적으로 그는 이 괴상한 정치철학 때문에 화를 입게 되었다고 보아 틀림은 없을 것이다.
둘째로 그는 의회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였다. 1960년 3월, 45년 헌법에 복귀한다면서 국회의 기능을 정지시키고 국회의원을 임명제로 한 것이나 1963년 5월 20일 그를 종신대통령으로 만든 것은 그 좋은 예이다. 그는 「교도민주주의」를 원하면서 독단적인 「민주주의」를 내세웠으나 기실 민주주의를 근본적으로 부정하였다. 뿐만 아니라 중립을 표방하면서 친공일변도의 편협한 노선에 사로잡혔고 평지풍파 격으로 「말레이시아」와의 긴장을 고조시켰다.
셋째로 그는 대세가 기울어졌음에도 불구하고 거취를 분명히 하지 않았다. 9·30 「쿠데타」로 그의 과오가 지적되고 민심이 급각도로 유리된 이상 그 때 이미 깨끗이 물러가야만 했다. 그가 권좌에 미련을 가지고 계속 권세를 누리려는 야심은 결국 오늘날 강제 추방당하는 결과를 초래하였다고 볼 수 있다.
이제 모든 권력을 박탈당한 「수카르노」는 마지막으로 9·30「쿠데타」 사건에 관련된 혐의로 재판을 받게 될 것이냐의 여부가 남아있다. 현 집권자인 「수하르토」 장군은 될수록 온건하게 해결할 것을 주장하고 있으나 그 귀추는 아직도 주목되고 있다. 그렇지만 보다 주목을 끄는 것은 앞으로의 「인도네시아」 정국이다.
무엇보다 먼저 문제되는 것은 「수카르노」 거세에 대한 친「수카르노」 파의 동향이다.
그들이 조직적으로 반기를 들것인지는 앞으로 두고 볼 일이지만 만약 그들이 그러한 행동을 취할 때 파란이 야기될 위험성도 없지 않다.
그와 더불어 또 하나 주목을 끄는 것은 「수카르노」없는 「수하르토」 정권체제에서 어떻게 정국을 영구적으로 인정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또 현재 위기에 직면한 경제를 어떻게 안정시키느냐 하는 문제가 있다.
「수하르토」 장군은 「판치·실라」(민족주의·인도주의·민주주의·사회주의·신에 의 신앙)를 골격으로 하는 45년 헌법에 되돌아가, 진정한 「인도네시아」의 건국이념을 살릴 것을 주장하고 있다. 그러나 여기서 가장 중요한 것은 진정한 민주주의를 살리는 것만이 정국 안정의 기본조건이 될 것이라는 점이다. 또한 경제안정을 위해서는 이미 새로운 정책들이 계획되고 있다.
「수카르노」 시대에 파탄된 경제를 부흥하기 위해서는 무엇보다 자유국가들과의 유대를 강화하면서 그 원조를 받는 것이 효율적인 방법이라고 하겠다. 어쨌든 「수카르노」가 거세된 「인도네시아」의 장래는 심상치 않은 여러 문제들이 개재돼 있으나 그 해결의 방법은 자명한 것이 있다고 보겠고 모든 것이 「수하르토」의 정치적 능력에 집중된다고 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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