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인도 총선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2억5천만의 유권자가 참여한 세계최대의 민주선거가 얼마 전 인도에서 있었다. 동양과 서양이 반씩 섞인 이상야릇한 분위기, 종교와 언어의 갈등, 눈에 띠는 무지와 빈곤, 정이 좀체로 안드는 막막한 혹서, 이런 곳에서 무사히 선거를 치렀다는 것은 기적같이 보인다. 웃지 못할 일도 적지 않았다. 변비한 마을에서는 군수가, 그러나 대학이 있는 곳에서는 교수가 징발되어, 선거관리위원장을 맡는다. 끌려나온 교수들의 고역은 이만저만이 아니며, 그중에서도 누구에게 투표하라느냐는 물음은 제일 큰 골칫거리. 정당마다 자전거·소·집 또는 보리수 등을 표방하고 있으나 다른 나라와는 달리 단순한 상징이 아니다. 문맹자가 하도 많아 그렇지 않고서는 당을 분간할 줄 모르는 정도의 민도이기 때문.
누구에게, 아니 어떤 상징에 표를 찍으라고 말하는 법이 아니라고 설명하면, 교수 나으리 그러실 수 있느냐고 애원한다. 교수는 하는 수 없이 민주주의의 기초지식부터 강의하지 않을 수 없다. 수십명, 수백명에게 이 성화를 당하니 짜증은 이만저만이 아니다. 민주선거의 뜻을 의심할 정도로.
설명을 듣고 혼자 결정하는 부류는 다행. 선거가 중요하다는 정도로만 알아차린 무리는 투표함에 돈을 집어넣음으로써 민주시민의 의무를 끝마치기도 하고, 부처님에게 시주바치는 모양, 금박종이를 투표함에 붙이기도 한다. 돈도 금박종이도 마련하지 못하는 가난한 사람은 투표함에 절만하고 돌아갔다는 것이다.
그러나 기막힌 일이라고 웃어 넘겨서는 안된다. 우선 교수를, 그리고 지성을 존경하는 퐁조를 역력히 볼 수 있다. 보다 중요한 것은 총탄대신에 투표함을 귀중히 여기는 신념이 벌써 뿌리박혔다는 사실이다. 엷게 그러나 널리 깔려있는 민주질서가 시간이 흐르는 동안에 얼마나 큰 힘을 보일 것인가. 이런 점에서는 인도가 부럽기만 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