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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루네이 노동장관|펭그랜·바하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인구 10만의 남양「보르네오」섬 북단의 소토후국 에서 왔다는 예비지식이 준 「이미지」와 실물과는 판이한 당당한 체구였다. 올해 50세의 영국보호령 「브루네이」의 노동장관은 한국의 눈부신 경제성장을 극구 찬양했다.
일산 6만8천「배럴」의 석유산출에 최근엔 해저 유전까지 개발하고있는「브루네이」의 국가개발계획에 종사할 한국 기술자 초청문제를 타협하기 위해 지난23일 내한한 적도선상 상하국의 관리로선 최초의 한국방문객.
약 1주여의 체한 기간 중 울산·부산 등의 산업시설을 시찰한 그는 평생 처음 먹는 한국의 요리엔 찬사를 아끼지 않았다.
1988년「브루네이」토후와 영국과의 조약으로 영국의 보호령이 된 「브루네이」는 사실상 영국고등 판무관의 지배하에 있다.
대부분이 「말레이」 족과「케다얀」족으로 구성된 「브루네이」의 원주민들은 영보호령으로 부터의 독립을 원치 않느냐는 물음엔 신중한 어조로 독립을 원하지 않을 리가 있겠느냐고 반문하면서 1959년에 신헌법이 시행된 이후로는 원주민이 자치권을 많이 행사할 수 있게 된 점을 지적, 역시 식민지 관리다운데를 역력히 엿보이게 한 그의 말꼬리는 흐려지고 표정은 어둡다.
그의 내한 목적인 한국 기술자 초청문제는 공식기자 회견에서 밝힌 것 이상은 「브루네이」의 정치적 지위문제와 함께 묻지 말아달라고 일체 「노·코멘트」. 「싱가포르」대학에서 영어를 전공한 그는 민족운동을 억압하려던 영구의 정책 때문인지 학생 땐 축구 등 운동에 열중했고 61년까지는 「브루네이」석유회사 간부로 있다가 관사로 투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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