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용평가사 못 믿겠다 … 증권사가 회사채 등급 매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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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나이스신용평가·한국기업평가·한국신용평가 3개사가 쥐고 있는 국내 신용평가 시장에 한 증권사가 도전장을 내밀었다. 회사채 신용등급에 끼어 있는 거품을 걷겠다는 것이 주된 목적이다.

 우리투자증권은 28일 자체 평가한 200개 업체의 회사채 등급을 연기금과 보험사 등 주요 기관투자가에 배포했다고 밝혔다. 3대 신용평가사가 등급을 매기는 약 400개 업체 중에 회사채를 많이 발행하는 200곳을 대상으로 했다. 이 회사 신환종 크레딧(회사채) 팀장은 “신평사 등급이 실제 거래되는 회사채 가격과 잘 맞지 않는다는 기관투자가의 의견이 많았다”고 자체 평가 배경을 설명했다. 실제 투자할 때 유용하게 쓰일 신용등급을 만들어 기관에 돌린 것이라는 얘기다.

 그간 국내 신평사 신용등급에 대해서는 ‘신용 인플레’란 말이 나올 정도로 거품이 끼었다는 지적이 많았다. 한국기업평가는 지난해 웅진홀딩스가 기업회생절차(법정관리) 신청을 발표한 뒤에야 신용등급을 A-에서 D로 내렸다. 국제 신용평가사인 무디스가 최근 3년 새 포스코 신용등급을 A1에서 Baa1으로 세 단계 내리는 가운데서도 국내 신용평가사에서의 등급은 최고인 AAA로 요지부동이었다. 이러다 보니 현재는 전체 회사채에서 A등급이 차지하는 비중이 80%에 육박할 정도가 됐다. A등급 비중은 2000년 27%에서 2005년 51%, 2011년 77%로 증가했다.

 기업이 회사채를 평가해 줄 신평사를 선택하는 현실이 이 같은 등급 인플레를 낳았다. “신용등급을 박하게 매겼다가는 기업이 서운하게 생각하고 거래를 끊을 수 있기에 신경을 쓰지 않을 수 없다”는 게 신평사의 고백이다. [중앙경제 2012년 12월 17일 1, 2면]

 사정이 이렇다 보니 같은 A- 등급인데도 금리 차이가 거의 두 배까지 벌어지는 현상이 벌어지고 있다. 거품이 잔뜩 낀 회사채와 그렇지 않은 채권의 차이다. 이래서야 기관이 신평사 신용등급을 투자에 제대로 활용할 수 있을 리 없다. 우리투자증권이 자체 신용등급을 매겨 기관에 제공하게 된 배경이다.

 신환종 팀장은 “구체적인 수치는 밝힐 수 없으나 자체 평가 결과는 약 20% 정도가 신평사 등급과 달랐다”며 “그중 3분의 2는 등급이 한 계단 낮았고, 3분의 1은 높게 나왔다”고 말했다. 이익이 점점 늘어나고 있는 기업은 이런 점을 반영해 신용등급을 후하게 주기도 했다는 것이다. 신평사에 비해 상대적으로 ‘동태적’인 평가를 했다는 뜻이다.

 우리투자증권은 앞으로 매분기 신용등급을 재평가해 기관에 제공할 예정이다.

권혁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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