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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 철자 단어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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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영·불 양국 국민 사이에는 지금도 좀처럼 풀리지 않는 미묘한 감정대립이 도사리고 있다.
「파리」의 「택시」 운전사들은 영어 하는 손님을 부러 못 알아들은 체 골탕먹이기 일쑤라 하거니와 영국 서민층에서 오가는 대화에선 「프랑스」인이란 항상 겁쟁이요, 얌체의 대명사처럼 돼있다. 그리고 이러한 감정 대립의 유래가 저 유명한 「워털루」 회전에 있음은 널리 알려진 사실.
1815년 6월, 「나폴레옹」의 대군은 「부뤼셀」 근교 「워털루」 평원에서 「웰링턴」 장군휘하의 영국군에게 일패도지. 그 후의 역사는 대체로 영국인에게는 자랑을, 「프랑스」이에게는 치욕의 회상을 안겨다 주었기 때문이다.
황제 「나폴레옹」이 혈로를 뚫고 달아난 다음, 전원옥쇄로써 마지막까지 『「프랑스」의 영광』을 지킨 것은 「캠브론느」 장군 휘하의 근위병들. 그리고 이 고사는 서양사에 이름높은 이른바 『「캠브론느」 장군의 말』이 생긴 것으로 더욱 유명하다.
최후의 항복을 권유받은 장군은 「이×같은 영국 놈들아!』라고 외치면서 장렬한 전사를 했던 것이다. 「프랑스」의 역사책에서는 이래로 이 비장하기는 하되 차마 입에 담기 거북한 말을 기록하는데 부심, 마침내 『「캠브론느」 장군은 <다섯 철자 단어>를 외치고 죽어갔다…』로 쓰기로 하고 있다. 「×」는 「프랑스」어로 다섯 철자의 Merde-. 이후 서구 각 국에서는 자기나라 고유의 말을 제쳐놓고 점잖게 이 「다섯 철자 단어」 또는 「캠 장군의 말」이라는 말로 그 뜻을 표시한다.
역사적 사실을 기록하는데도 이만한 고려와 「위트」를 부릴 줄 아는 것이 문명사회의 언어 윤리이다. 하물며 가장 아름다운 언어 선택을 본분으로 삼아야 할 이 나라 예술가·문필인들이 비록 일부나마 최근 자랑삼아 차마 입에 못 담을 욕지거리를 마구 쏟아 놓는 경향을 쫓고 있음은 한심한 일, 언어의 무정부 상태라고나 할까.
이른바 「새끼들 작가」가 나타나더니 또 최근에는 「변소의 철학」 작가가 탄생했다고 신문광고가 대서 특필하고 있다. 그들의 「고발 정신」이 어떻게 돼먹었고, 「원색 수필의 정수」가 무엇인지는 모르겠으나 그 광고를 보면 정말 기가 차서 바로 그 「다섯 철자 단어」를 그들에게 던져 주고 싶어진다. 국어의 오물사건도 무색하다 할 수밖에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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