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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국적기업 탈세 정밀 조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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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영국에 본사를 둔 위스키 회사 A사는 제3국에 있는 계열사를 통해 위스키를 국내로 수입해 고가에 판매했다. 이 회사는 몇 년 뒤 위스키 수입가를 55%나 뚝 떨어뜨렸다. 하지만 국내 시판가는 그대로 뒀다. 그만큼 이 회사의 이익은 급증했다. 이 회사가 이렇게 계열사로부터 위스키를 낮은 가격에 수입한 건 세금 때문이었다. 위스키의 경우 수입 때 부과되는 관세·주세 등의 세율이 155%에 달한다. 예를 들어 경쟁업체가 위스키를 100원에 수입해 155원의 세금을 내지만, 이 회사는 45원에 수입해 69.75원의 세금만 내면 된다. 경쟁사의 절반도 되지 않는 세금만 내고 막대한 수익을 올린 것이다. 이 회사는 이렇게 계열사 간 특수관계를 이용해 4000억원에 달하는 세금을 탈세했다.

 관세청 관계자는 “이 회사는 전 세계에 자회사가 100여 개에 달한다”며 “원액을 생산하는 증류회사, 병입포장하는 생산회사, 판매하는 수출 회사 등 전 세계 계열사를 활용해 탈세하고 이익을 배당금 명목으로 국외로 유출했다”고 말했다.

 관세청이 이같이 본사와 지사 간 특수거래관계를 악용해 조세를 회피하는 다국적기업에 대해 대대적으로 조사에 나선다.

 관세청은 “탈세, 밀수, 불법 외환거래 등 관세 관련 지하경제 규모가 연간 47조원에 달한다”며 “특히 다국적기업의 조세 회피 행위에 대해 강력 대응하기로 했다”고 27일 말했다. 국내 현지법인 등 다국적기업과 관련이 있는 기업은 모두 5000여 개로 국내 수입 비중의 31%를 차지한다. 관세청이 최근 3년간 이들로부터 추징한 세액은 전체 추징액의 70%에 달한다. 그만큼 다국적기업의 탈세가 잦다는 의미다.

 관세청 관계자는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는 경제협력개발기구(OECD)와 같은 국제기구에서도 이슈화되고 있다”며 “국세청과 공조해 철저히 조사해 나가겠다”고 말했다.

 관세청은 이를 위해 관세청 차장을 단장으로 하는 지하경제 양성화 추진단을 설치하고 지하경제 단속 인력을 431명으로 두 배가량 확대했다. 또 다국적기업의 조세회피를 포함해 개인·법인 등의 재산 해외도피, 농산물과 귀금속 밀수, 원산지 증명서 위조 등을 중점 조사 대상으로 선정했다.

 국내 무역업체 B사는 일본으로 의류를 밀수출한 뒤 밀수출 대금 1조4000억원을 환치기 업자를 이용해 들여오다가 최근 적발됐다. B사는 환치기 업자에게 수수료를 주고 밀수출 대금 반입을 부탁했다. 환치기 업자는 외국인 운반책을 통해 세관에 합법 자금으로 신고해 국내에 반입한 뒤 여러 외국인의 여권 사본을 이용해 불법으로 환전해 수출업체에 전달하는 방법을 썼다. 관세청은 이 같은 환치기 업자를 활용한 탈세도 심층 조사한다.

  관세 징수액(연 16조원)의 30% 이상이 환급액으로 다시 나가고 있는 점을 고려해 원재료를 바꿔치기하거나 용량을 부풀려 계산하는 방식으로 과다하게 환급액을 받아가는 사례를 꼼꼼히 들여다볼 예정이다.

 관세청 관계자는 “지하경제 양성화를 통해 매년 1조5000억원 이상의 세수 효과가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김창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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