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윤상직 “배 값 후려치기 말라” 해운사 “조선업체가 더 큰데…”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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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윤상직(사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27일 “해운사가 (가격) 후려치기를 하고 있다” 고 말했다. 해운사는 “말도 안 된다”고 펄쩍 뛰었고, 조선사는 “협상 중”이라며 의아해했다.

 윤 장관은 이날 한국경영자총협회 포럼에서 지난달 한국전력공사가 4개 해운사와 2조원 규모의 유연탄 수송 계약을 한 것을 언급했다. 그는 “중소 조선소를 살리기 위해 국내 조선소에 화물선(벌크선)을 발주하는 조건으로 해운사에 운송을 맡겼다”며 “당시에 ‘가격을 잘 쳐 달라’고 부탁했는데, 갑을 관계가 바뀌니 (태도가) 달라졌다”고 말했다. 윤 장관은 “그렇게 하면 누구를 믿고 일을 하겠느냐”며 “대기업도 정부에 요구만 할 것이 아니라 할 일은 해야 할 것”이라고 강조했다.

 한전과 계약 을 한 해운사 는 현대상선·STX팬오션 컨소시엄, 한진해운·SK해운 컨소시엄이다. 현재 이들은 15만t급 벌크선 9척의 발주 조건을 조선사와 협상 중이다. 조선업계에서는 한진중공업과 성동조선이 가장 적극적이고 STX조선해양·대한조선 등도 뛰고 있다. 조선업계는 윤 장관의 발언에 의아하다는 반응이다. 수주를 추진 중인 한 조선사 관계자는 “우리야 나쁠 건 없지만 협의 중인 사안에 장관이 나선
이유를 잘 모르겠다” 고 말했다. 다른 업체 관계자 는 “경영에 도움이 되기는 하겠지만 건조 시점(2015~2018년)이 분산되고 척 수도 많지 않아 당장 효과가 나타날 정도의 사안은 아니다”며 “정부가 만든 프로젝트를 통해 업계에 일감을 준다는 상징성이 더 큰 상황”이라고 말했
다. 업계에서는 지방에서 발언권이 센 조선소 하청업체들이 해당 지역의 경제단체를 통해 우려를 표시한 것이 장관에게 전달된 것으로 보고 있다.

 윤 장관의 발언에 대해 해운업계에서는 “대기업 군기 잡기에 나선 것 아니겠냐”고 해석했다. 윤 장관은 지난달 14일 현대·기아차 협력업체 채용박람회에서도 “대기업 내부서들이 경쟁하듯 납품단가를 깎는 것은 지양해야 한다”고 말했다. 해운업계는 “벌크선 계약을 후려치기로 규정하는 것은 번지수가 잘못됐다”는 입장이다. 한 업계 관계자는 “협의 중인 조선업체 중 ‘중소기업’이라고 할 수 있는 곳이 있느냐”고 반문했다. 수주를 추진하고 있는 조선소 중에선 성동조선만 중형급으로 분류된다. 대한조선은 대우조선 해양이 위탁경영하고 있다. 이보다 작은 조선사는 15만t급 벌크선을 만들기 어렵다.

 세계 경기 침체에 따른 물동량 감소로 해운업의 어려움이 커지고 있는 점은 산업부가 외면한다는 불만도 나왔다. 자격 논란에 도 불구하고 현대글로비스가 최근 한전 자회사의 수송 계약을 따낸 것을 예로 들며 “기존 해운업체는 보호할 가치가 없느냐”는 볼멘소리를 한 해운업계 임원도 있었다. 조선업은 산업부 소관이고, 해운업은 해양수산부 소관이다. 이에 대해 산업부 공보실은 “조선소와 헐값 계약을 하면 조선소에 납품하는 중소업체에 부담이 전가된다”며 “제값주는 문화를 정착하고, 하청업체가 다른 대기업과는 거래를 못하도록 막는 관행을 개선하는 것이 동반성장 정책의 2대 목표”라고 설명했다.

 한편 윤 장관은 이날 포럼에서 “우리는 자유무역협정(FTA)을 너무 빨리 동시 다발적으로 했다”며 “협상의 기준이 되는 모델을 가지고 있었는지 의문”이라고 말했다. 그는 “협상하는 사람이 모르고 급하니까, 막 하다 보면 뭐가 어떻게 되는지 모르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론스타가 한국 정부를 상대로 투자자국가소송(ISD)을 낸 것에 대해서는 “한국·벨기에 투자협정(BIT)에 에러가 있는 부분이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정부조직 개편으로 통상 업무는 외교부에서 산업부로 넘어왔다.

김영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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