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권근영의 그림 속 얼굴

성 프란치스코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28면

권근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

맑은 하늘만큼이나 청신한 대기가 천지를 감싼 듯하다. 기도서를 읽던 맨발의 성자는 시간도 잊었다. 책상 위 해골, 저 멀리 보이는 천상의 예루살렘이 이미 시공을 초월했다. 굴에서 나와 팔 벌리고 심호흡하는 그는 세상이 만들어지던 순간을 묵상하고 있을까. 입을 벌린 성자의 눈길은 파란 하늘을 관통하는 금빛 광선(그림 왼쪽 위)에 머물렀다.

 그림 속 인물은 아시시의 성 프란치스코(Francesco d’Assisi·1182∼1226), 이탈리아 가톨릭 교회의 탁발 수사다. 청빈한 생활, 신발도 신지 않은 검소한 옷차림, 주변에 몰려든 동물들이 그를 알리는 도상이다. 자연과 인간이 조화를 이루던 시절의 그림이다. 베네치아 화파의 창시자 조반니 벨리니(1430∼1516 무렵)의 ‘황홀경에 빠져있는 성 프란치스코(St. Francis in Ecstasy)’다.

조반니 벨리니, 황홀경에 빠져 있는 성 프란치스코, 1480년 무렵, 템페라와 유화, 125×142㎝, 뉴욕 프릭 컬렉션.

 우리로 치면 고려시대의 전반부에 활동했던 프란치스코는 상인 집안에서 태어나 풍요로운 유년기를 보냈다. 20대 중반 모든 세속적 가치를 포기하고 교회로 귀의했다. 그에 감동해 많은 젊은이들이 모이자 1206년 프란치스코는 수도회를 세웠다. 슬로건은 ‘청빈(淸貧)’. 소속 수도사들은 철저히 무소유를 지향하는 삶을 살며, 탁발로 연명했고, 가난한 이들과 함께했다.

 성 프란치스코가 청빈을 강조한 것은 역설적으로 당시 사람들이 이 가치를 중시하지 않았다는 얘기일 거다. 중세 말 상공업 활동이 활발해지면서 도시화가 이뤄지고 빈부 차도 생겼다. 십자군을 모병하며 교회는 신의 이름으로 욕망을 채웠다. 프란치스코가 내세운 청빈의 교훈은 가난한 이에겐 위안이, 부유한 이에겐 좋은 삶의 지표였다. 눈높이 강론도 이들의 특징이었다. 기존 교회는 일반인은 알 수 없는 라틴어로 강론했던 반면, 탁발수도회는 당시 통용되던 이탈리아어 강론을 펼쳤다.

 양극화가 어디 프란치스코가 활동했던 중세만의 문제일까. 라틴어 대신 이탈리아어를 쓰는 새 교황은 프란치스코 성자로부터 이름만 빌린 게 아님을 보여주는 신선한 행보를 이어 가고 있다. 즉위 미사에서 “가장 가난하고 힘없고 보잘것없는 이들을 사랑으로 끌어안아야 한다”고 강조한 그는 오늘, 성 목요일 저녁의 ‘주님 만찬 미사’를 로마의 미성년자 교정시설에서 집전한다. 부활절(31일) 직전 목요일은 예수가 열두 제자와 함께한 최후의 만찬을 기리는 날이다. 교황은 이때 소년범 12명의 발을 직접 씻기고 입을 맞출 예정이다. 청빈과 박애, 프란치스코의 교훈으로 세상이 좀 더 밝고 따뜻해지면 좋겠다.

권 근 영 문화스포츠부문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