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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FOCUS] 고승의 기적 … 입적 86년째 ‘자연 미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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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시아 불교의 정신적 수도인 울란우데 인근의 이볼가 사원 본당. 리아 노보스티

바이칼 호수 아래쪽, 러시아 부라티야 공화국의 수도 울란우데 인근에 있는 이볼가 사원(러시아어로 ‘이볼긴스키 다찬’·사진1)은 오늘날 러시아 불교의 정신적 수도로 여겨지는 곳이다. 1945년 건립된 러시아에서 가장 큰 불교 사찰이다.

러시아에 불교가 본격 등장한 것은 18세기. 하지만 1914년 러시아 제국으로 흡수된 투바 공화국에서는 이미 700여 년 전부터 불교가 들어왔다. 18세기 부랴트 불교의 수장은 러시아 제국의 여제 예카테리나 2세를 전능한 치료의 여신 ‘화이트 타라’(백도모)의 화현(化現)이라고 공포하기도 했다.

19세기 말~20세기 초까지 러시아의 아시아 지역에는 15만 명 이상의 불교 신자가 있었다. 150개가 넘는 수메(작은 사찰)와 30개의 다찬(큰 사원)이 있었다. 오늘날 러시아의 불자는 300만 명 정도다. 러시아 종교 인구에서 세 번째다.

부랴트 사람들은 이볼가 사원을 ‘투게스 바야스갈란타이 울지 노모이 후르딘 히이드’라고 부른다. ‘기쁨이 넘치며 행운을 가져오는 가르침의 바퀴가 돌아가는 사원’이라는 뜻이다. 현재 이볼가 사원은 몇 개의 법당과 도서관, 그리고 러시아에 하나뿐인 불교대학 등 총 여덟 개의 건물로 구성된 사찰군을 형성하고 있다. 대학에서는 철학과 티베트 전통 의술을 연구한다.

이볼가 사원의 명성은 해외에도 널리 알려져 있다. 정신적 수양을 연구하는 것도 있지만 무엇보다 제12대 ‘판티토 함보 라마’(부랴트 불교의 수장)인 다시-도르조 이티겔로프(사진2)의 명성에 힘 입은 바 크다. 20세기 초 러시아 불교계의 수장이자 14대 달라이 라마와 동문 수학한 그는 1927년 입적을 앞두고 승려들에게 두 가지를 부탁했다고 한다. 하나는 죽기 전 자신을 위해 추도 법회를 열어줄 것, 다른 하나는 30년 후 자신의 묘를 열어 보라는 것이었다.

승려들은 스승이 입적하기 전 감히 추도 법회를 열 엄두를 내지 못했고 그러자 이티겔로프는 가부좌 자세로 직접 추도법문을 읊다 열반에 들었다고 한다. 그의 열반 후 승려들은 가부좌로 다리를 튼 이티겔로프의 시신을 그대로 삼나무 관에 모신 후 울란우데에서 머지않은 후헤주르헨에 매장했다.

그런데 30년 뒤인 57년 그의 관을 열자 놀랍게도 시신은 부패하지 않았다. 시신은 의식을 치르고 법복을 갈아 입힌 후 재매장됐다. 73년 다시 열었을 때도 역시 그 상태 그대로였다. 또 매장됐다. 2002년 9월 이티겔로프의 관이 열렸다. 이번에는 의심 많은 과학자들이 직접 검시했다. 시신의 관절은 여전히 유연하고 피부는 부드러웠다.

전문가들은 이유를 설명하지 못했지만 승려들은 마음에 답을 갖고 있었다. 성자의 시신은 이볼가 사원으로 옮겨져 자원봉사자들이 함께 운력(運力)을 통해 새로 건립한 경내에서 가장 아름다운 법당에 모셔졌다.

이 제12대 ‘판티토 함보 라마’(부랴트 불교의 수장) 이티겔로프의 온전한 미라를 직접 보기 위해 순례자들의 발길이 멀리 외국까지 이어지고 있다. 사람들은 이티겔로프에게 기도를 하면 소원이 이뤄진다고 믿는다. 그 몇 십 년 사이 이 절은 쇄락한 자그마한 사찰에서 거대한 사찰군으로 바뀌었다.

세르게이 이바노브 기자

본 기사는 [러시스카야 가제타(Rossyskaya Gazeta), 러시아]가 제작·발간합니다. 중앙일보는 배포만 담당합니다. 따라서 이 기사의 내용에 대한 모든 책임은 [러시스카야 가제타]에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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