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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아 강타한 '한류 열풍'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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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히 '김치열풍(kim-chic)'이라고 부를 만하다.

한국 음식과 음악은 물론 눈썹 모양과 신발 스타일까지, 오랫동안 일본풍과 할리우드에 점령당했던 아시아 전역에 한국 문화 열풍이 불고 있다.

얼마 전까지만 해도, 한국 최고의 문화 수출품은 저린 배추에 고춧가루를 버무려 만든, 자극적이고 지독히 매운 김치였다.

하지만 이제는 한국 텔레비전 쇼와 영화, 패션, 그리고 대중 스타들이 훨씬 화끈하고 매력적인 상품으로 각광받고 있다. 대만 채널 TV 관계자인 아만다 양은 "K-팝"(한국대중음악)밴드인 S. E. S.와 신화를 격찬하며 "그들의 모습은 거리의 갱 조직과 닮았습니다. 너무 멋져서 한판 붙고 싶어진답니다."라고 말했다.

지난해 한국의 슬픈 멜로드라마, "가을동화"는 이곳에서 대성공을 거뒀다. 대만 팬들은 드라마 속 주인공들이 성장한 곳이며 이후 그들이 재회하는 장소이기도 한 도시, 속초로 단체관광여행을 떠나기도 했을 정도였다. 속초는 서울에서 북동쪽으로 1백50 킬로미터 떨어진 도시다.

"가을동화"는 여주인공이 암으로 목숨을 잃으면서 막을 내린다.

아시아서 인기몰이

한국 텔레비전 드라마는 엄격히 통제된 공산국가 베트남에도 바깥 세계를 볼 수 있는 매력적인 기회를 제공한다.

한국의 TV 프로그램은 베트남에서 너무 인기있어서 같은 시간대에 하노이의 4개 채널중 두 곳에서 한국의 TV쇼를 방영하는 것도 간혹 볼 수 있다.

호치민시와 하노이 길거리의 베트남 젊은이들은 서울에서 유행하는 가느다란 눈썹에 짙은 화장을 하고, 몸에 달라붙은 옷을 입으며, 뭉툭한 사각신발을 신고 다닌다.

한국의 대중문화는, 오랫동안 아시아 문화를 주도해온 일본의 텔레비전 방송과 영화관에서도 성공을 거두고 있다. 일본은 오는 5월 월드컵 축구대회를 한국과 공동 개최하기에 일본 언론들은 서울의 미세한 움직임까지도 상세히 보도하고 있다.

일본 최고의 음반사인 에이벡스(Avex)는, 남성 5인조 그룹인 신화와 여성 3인조 그룹인 S. E. S.를 포함한 몇몇 한국대중가수들과 배급계약을 체결했다.

남북한 사랑 이야기

서로 다른 이념과 날카로운 철조망으로 갈라진 남북한 사람들이 총부리를 맞대고 있는 한반도의 특수상황은 한국 영화의 단골 소재다. 이러한 남북관계는 금지된 사랑이라는 유사성 때문인지, 모든 문화권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는 듯하다.

지난해 일본 극장가에서 놀라운 성공을 거든 한국 영화 "쉬리"는 남북한의 공작원들이 사랑에 빠진다는 이야기였다.

한국은 물론 해외에서도 대성공을 거둔 또 다른 한국영화, "공동경비구역 JSA"도 남북한 군사분계선상에 위치한 판문점에서 펼쳐지는 네 명의 남북한 경비병들의 우정과 긴장관계를 다루고 있다. 판문점은 세계 최대 무장병력 주둔지이며 1953년 휴전협정이 조인된 곳이기도 하다.

홍콩에서도 선전하는 한국풍

대량 영화 제작과 광둥어로 불려진 가볍고 날카로운 음악으로 아시아를 공략했던 홍콩에서도 한국 엔터테인먼트의 위치는 확고하다.

이제 홍콩 타블로이드 잡지들은 한국 영화배우와 가수들에 관한 기사를 싣고 있다. 홍콩의 한 서점 주인인 딕키 창은 올해 한국 비디오 시디 판매량이 30 % 정도 상승했다고 밝혔다.

홍콩이 쇼핑의 중심지로 명성을 날리고 있지만, 몇몇 홍콩인들은 한국 쇼핑몰과 시장으로 달려가고 있다.

스스로를 ‘여’라고 성만 밝힌 홍콩 신문의 한 편집자는 "젊은 여성들이 쇼핑하기에 안성맞춤인 곳이 서울"이라며 "스타일은 현대적이지만, 가격은 일본 상품보다 저렴하다"고 그 이유를 설명했다.

한류 열풍

중국사람들도 ‘한류 열풍’을 뜻하는 ‘한궈러’에 빠져들고 있다. 베이징의 패스트푸드점에 들어가 보면, 텔레비전 화면 속에서 춤추고 노래하는 한국 남성 밴드의 모습을 쉽게 볼 수 있다.

비디오와 음반을 판매하는 장 젠화(24)는 "80년대에는 일본과 대만, 그리고 홍콩의 영화와 대중가수가 인기를 모았지만, 이제 한국이 대중문화를 장악하고 있다."고 말했다. 그의 상점에도 한국 비디오와 음반이 골고루 갖춰져 있다.

장은 "한국인들은 아시아인이며, 우리와 닮았기" 때문에, 사람들은 한국 대중문화를 뚜렷하고 신선한 문화라고 생각할 뿐 위협적으로 받아들이지 않는다고 말했다. "그래서 한국 문화에 동요되기가 쉽다."고 그는 덧붙였다.

사회학자인 하빕 콘드커도 이러한 견해에 동의한다. 한류 열풍은 아시아 전역에서 불고 있는 "아시아의 정체성 재확인" 움직임과 관련이 있다고 그는 말했다.

싱가포르의 한 대학에서 교편을 잡고 있는 콘드커는 “이같은 현상은 일종의 범아시아주의”라며 “이제 아시아는 유럽과 미국이 아니더라도 대안 문화를 찾을 수 있다"라고 말했다. 가장 최근에 한류 열풍을 맞은 곳이 바로 싱가포르이다.

한국 음식점의 인기는 음식을 좋아하는 부유한 도시국가, 싱가포르에서 급상승하고 있으며, 지난 몇 달 동안 자막이 있는 한국 TV 드라마도 인기 몰이에 성공하고 있다.

그러나 모든 아시아 국가들이 "범아시아주의"를 환영하는 것은 아니다.

베트남의 한 관영 신문은 "2001년 10대 불미스러운 문화사건" 중의 하나로 한국과 중국 방송 프로그램이 베트남에서 인기를 끌었다는 점을 꼽았다.

경제적 요인

한류열풍은 경제적 요인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 1997년 아시아는 혹독한 재정위기를 맞았고, 현재도 세계 경제 침체와 함께 경제적 어려움을 겪고 있다.

싱가포르 주재 한국 대사관의 김희택 참사관은 "한국 대중음악, 텔레비전 드라마, 그리고 영화는 가격 면에서 경쟁력이 높다"고 말했다.

싱가포르 국제 영화제의 대표인 필립 체는 한국 영화가 주목받는 이유는 단지 영화의 질이 향상되고 있기 때문일 뿐이라고 말했다.

세계의 많은 영화제에서 심사를 맡고 있는 체는 최고의 한국 영화 중 하나로 "공동경비구역JSA"를 꼽으며 "이 작품은 매우 세련되면서도 재미있다"고 평했다.

탐정 추리물에 사랑 이야기를 곁들인 "쉬리"는 한국에서만 6백만 관객을 동원하면서, 대성공을 거둔 미국 영화, “타이타닉”의 관객 수를 능가하는 등, 한국영화의 관객 동원 기록을 모두 경신하기도 했다.

SINGAPORE (CNN) / 정은주 (JO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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