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MB맨 물러나라의 속뜻 ‘자리 욕심 나는데 마침 구실도 있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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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1면

[일러스트=김회룡 기자]

대만 정토종의 큰스님 정공법사(淨空 : 1927~ ). 그윽한 미소가 온 세상을 품고 남을 미륵불의 그것을 빼닮아 ‘살아있는 미륵(生彌勒)’으로 불린다. 50여 년 불법을 강(講)해 온 그는 불가의 4대 천왕을 이렇게 풀었다.

 "4대 천왕은 호법신(護法神)이다. 어떤 법을 지키나? 바로 우리 자신의 법이다. 동쪽, 동방천왕은 가정과 나라, 세상을 지킨다. 그를 달리 지국(持國)천왕이라 부르는 이유다. 세상을 지키려면 어떻게 해야 하나. 중생 각자가 본분을 지키고 책임을 다해야 한다. 그의 비파는 지킴의 상징이다. 본분을 지키는 것은 금(琴)을 타는 것과 같다. 현이 느슨하면 소리가 안 나고, 너무 팽팽하면 끊어진다.

 그런데 인생은 본분을 지키는 것만으론 충분치 않다. 남쪽, 증장(增長)천왕이 이어받는다. 그는 ‘인생은 부진즉퇴(不進卽退·나아가지 않으면 퇴보한다)’라며, 지혜·학문·능력을 끝없이 갈고닦으라 주문한다. 그러려면 잡념이 없어야 한다. 그가 쓰는 검은 ‘지혜의 검(慧劍)’이다. 혜검은 번뇌를 끊는다. 동·남 두 천왕의 주문을 요악하면 ‘책임을 다하되 끝없이 정진하라’다. 이런 인생이 어떻게 가능한가. 나머지 두 천왕에게 답이 있다.

 서쪽, 광목(廣目)천왕은 많이 보라 가르친다. 북쪽, 다문(多聞)천왕은 많이 들으라 주문한다. 중국 속담 ‘만권의 책을 읽고, 만리길을 여행하라’는 말과 일맥상통한다. 눈을 부릅뜨고 보고, 귀를 쫑긋 열고 들으면 ‘남의 잘못은 따라 하지 않고 장점은 배우게 된다’. 광목천왕의 용(龍)은 천변만화의 상징이다. 부릅뜨고 봐야 비로소 그 변화를 알 수 있다. 다문천왕의 우산은 덮개다. 세상의 오물과 더러움을 막아준다.”

 불가의 그것과는 많이 다르지만 한국 금융계에도 4대 천왕이 있다. 요즘 공공기관장 물갈이의 첫 표적이 돼 연일 뉴스를 타고 있다. 금융권 4대 천왕은 2011년 강만수 KDB금융지주 회장의 등장으로 완성됐다. 강 회장과 김승유·이팔성·어윤대 당시 3대 금융지주회장을 묶어 부른 이름이다. 언제 누가 이름 붙였는지는 확실치 않다. 이유는 짐작이 간다. 네 사람은 이명박 대통령과 깊은 인연이 있다. 학교 선후배, 또는 정치적 동지다. 불가의 4대 천왕이 수미산 제석천을 호위하듯, 금융 4대 천왕이 MB를 둘러싼 모양새를 빗댔을 것이다.

 새 정권이 3대 천왕(김 회장은 지난해 물러났다)을 정조준한 이유를 여기서 찾는 이들도 있다. 자리가 욕심나는데, 마침 구실도 있다는 것이다. MB정권이 노무현 사람 쫓아낸 이유와 같다.

 이렇게 시끌벅적, 물갈이 후엔 어떻게 될까. 한국 금융이 발전하고 좋아질까. 기대하기 어렵다. 아인슈타인은 말했다. “같은 일을 반복하면서 다른 결과가 나오길 바라는 것보다 어리석은 일은 없다.”

글=이정재 논설위원·경제연구소 연구위원
사진=김회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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