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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지에 끌려간 김 선수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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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빅토르·위고」의 불후의 명작 『노트르담의 꼽추』에 나오는 추남 「가지모도」와 미모의 「집시」여인 「에스메랄다」얘기는 아마 모르는 사람이 없을 것이다. 그 안에 나오는 주인공과 배경의 극적 「콘트라스」가 언제까지나 사람들의 마음을 사로잡기 때문일 것이다. 희랍시대에 시작한 사원의 신성불가침권이 적국의 병사·함선·물자는 물론, 주인에게 학대받는 노예와 사지를 헤어 나온 부상병, 맹·노·아 등 신체불구자들을 비호해주는 권리로 확정된 것은 꽤 오래 되었지만 『노트르담의 꼽추』는 「파리」의 「노트르담」대가남을 중세기에 있어서의 이와 갈은 「아사이럼」의 산 실례로 등장시켰다는 점에서 감명이 깊다.
정치적 망명을 요청했던 북괴의 김귀하 선수가 끝내 북괴에 인도되어 누구 나가 그 앞에 다가올 죽음의 그림자를 느끼지 않을 수 없으리라. 사태가 이에 이른 것도 까맣게 모르고있던 정부당국자가 뒤늦게 현지주재 총영사를 긴급 소환한다, 「캄보디아」정부에 항의를 낸다는 등 수선을 피우고있지만 그런 사이에도 김 선수의 운명은 이미 결정된 것이 아닌가 걱정이 앞선다.
잘못의 시초가 어디에 있는가는 좀더 진상이 밝혀져야 하겠지만 타국 영토에 주재, 정박하는 외국공관이나 함선이 정치적 망명을 요구하는 인사들에게 피난처를 제공할 권리가 있고 제공해야할 의무가 있음은 오늘날 민주국가에서는 물론, 이른바 「철의 장막」안 국가들까지가 함께 시인하고 있는 불문율이다.
멀리는 1936∼9년대의 「스페인」내란 당시 3, 4천명이 「마드리드」주재 외국공관에 피신하여 생명을 건진 것을 비롯하여 55년에는 「아르헨티나」의 독재자 「페론」의 「부에노스·아이레스」주재 「파라구아이」공관 망명, 56년의 「헝가리」의학당시 「민센티」대주교의 「부다페스트」주재 미국대사관 망명 등은 그 두드러진 실례들이 있다. 역설적인 것은 공산국가·중남미국가 등 정치적 안정이 취약한 나라일수록 이 망명권에 대한 옹호가 헌법규정에까지 삽입돼 있다는 사실이다. 인도주의와 국제관례를 무시하고 김 선수를 몰아세워 사지에 쫓아낸 일본과 「캄보디아」정부의 처사에 전인류의 분노가 쏠리고 있음을 알아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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