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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전 서울대학교총장 유기천씨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1면

「인간 유기천에게는 흔쾌한 해, 개교20주년을 맞은 서울대학에는 획기적 발전의 계기, 「테제」에 대한 「안티·테제」의 「이벤트」를 마련한 해』라고 회고했다.
『나의 총장직퇴임(11월9일)을 외부에서는 흔히들 「비극」이라 일컫지만 진실로 국가사회에 봉사할 수 있는 길이 이제부터 열린 셈이지』-5척 단신에 깐깐한 성격의 소유자 유기천 박사는 그의 사퇴가 『정상적인 인생의 「루틴」이라』면서 추호도 후회 않는다고 했다.
한때는 「쌍권총의 대학총장」으로 입길에 오르내리던 법학박사. 그러나 자신은 『끝까지 강직한 신념대로 비뚤어진 한국 풍토적 정치와 타협 안한 것이 총장생활전부』라 했다.
한·일 협정비준 반대학생「데모」가 한창 일던 작년9월15일, 「데모」진압총장(?)으로 취임하여 학생「데모」로 물러나기까지 l년2개월-.
그동안 유 박사는 학생처벌만능주의라고 많은 비난도 받았다. 『내가 어째서 처벌만능주의자인가? 언론기관이 그렇게 만들었지. 재작년 6·3「데모」때(당시법대학장)법대생은 한 명도 처벌하지 않았어…총장재임 중에도 내 손으로 처벌한 학생이 10명 미만인걸…』점점 억양이 높아져 갔다.
잠시 말을 멈추고 나서 유 박사는 학생「데모」에 관한 부드러운 주해도 일석. 『학생「데모」가 무조건 나쁘다는 것이 아니라 부모의 입장에서 학생들의 탈선을 엄히 다스린 것 뿐이라』고 했다.
차제에 학생처벌에 대한 소신이 있으면 좀… 『스승은 학생을 애호하는 입장이지만 대학의 본질은 국민학교와 달라 문화의 「레벨」을 높이는 곳이기 때문에 한두명의 공부 안 하려는 학생을 굳이 따라다니며 공부시킬 이유는 없어요. 미국 「하버드」대학에도 성적이 불량한 학생에게는 강제추방제가 있거든요』-역시 강경한 말투.
『대학교육에는 「페스탈로찌」의 박애정신이 크게 작용하지 않는다』는 것이 그의 함축성 있는 지론 같았다.
-충무발언(10월22일)으로 세상에 물의가 많았는데… 『이 역시 언론기관의 와전입니다. 「…학교도 해방직후에는 공산당이 침투하여…」라고 말했는데 신문에는 「해방직후」라는 말이 빠져 현재를 지적한 것처럼 보도되더군. 언론기관 고유의 사명이 어떤 「이벤트」를 정확·신속하게 보도함에 있을진댄 어찌 이럴 수가…말이 났으니 권총사건 얘기까지 마저 밝히겠다.』
유 박사의 항변은 한국「매스콤」을 크게 책망(?)하면서 단숨에 이어갔다. 『이번만은 내가 말한 대로 써달라』는 다짐을 단단히 하면서…. 『이 사건도 신문에 나기까지는 전혀 몰랐어요. 뒤에 진상을 알아본 즉, 서울대학교에서는 역대총장들이 권총을 대여 받아 수위에게 맡겨둔 모양인데 지난번 「존슨」미국 대통령 방한 시에 경찰이 회수해 갔기 때문에 비서들이 내가 평소에 맡겨두는 도장을 가지고 다시 신청했다가 세상에 잘못 전해진 것이더군.
이것을 마치 내가 학생들이나 쏘려고 권총휴대를 신청한 것처럼 보도하고 또 세상이 다 그렇게만 아니 정말 어처구니가 없는 일이야….』
유 박사는 이 순간 치솟는 분노를 가누지 못하는 양 얼굴을 붉히기까지 했다.
화제를 바꾸어 사표제출 동기를 물어봤다. 『음, 그거야 간단하지. 대학총장은 어디까지나 학자지 정치인이 아니야. 그런데도 현실은 정치를 해야하니 더 머무를 이유가 없다고 직감할 수밖에…. 정치인이 될 수 없는 내가 자초지종 학자의 양심과 지조를 굽히지 않고 거취를 명확히 한 것은 지금 생각해도 흐뭇해…. 이런 의미에서 올해는 내 생애를 통해 매우 흔쾌한 해요, 내가 나아갈 길을 재발견 한해 이기도하지.』
그렇다면 앞으로의 포부를 좀…
『총장자리에 있으면서도 강의를 했고 ,총장을 그만둔 후에도 계속 법대와 사법대학원에 서 지금까지 교수자격으로 강의하고 있지요. 이제는 무거운 짐을 벗었으니까 법조인교육과 법학계를 위해 저술활동도 하고 국제학술활동(법을 통한 세계평화회의 위원장)도 마음껏 해 볼테야….』어느 젊은이에게도 못지않는 패기와 의욕을 보이면서 이렇게 매듭지었다. <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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