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밭에 있는 배추 소매점 가면 한국 6배, 일본 2배 값 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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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4일 전남 진도 배추밭. 산지 수집상 주영배(43)씨는 이날 오전 인부들을 동원해 월동배추 2700포기를 수확했다. 주씨는 지난해 9월 파종만 된 밭을 밭떼기로 사 배추를 키워 왔다. 구입 당시 주씨는 포기당 800원에 가격을 쳐 밭주인에게 216만원을 건넸다.

 이 배추는 수확 후 불과 48시간 뒤 일반 소매점에서 처음보다 6배 이상 뛴 5000~5300원에 팔려 나갔다. 산지 수집상 1·2·3→도매시장→납품도매상 등 세계적으로도 가장 복잡한 유통과정을 거치면서다.

 7일 일본 도쿄(東京)에서 자동차로 1시간 거리인 지바(千葉)현. 배추밭에서 포기당 산지 가격 220엔(약 2524원)에 출하된 배추는 도쿄 시나가와(品川)구 마트에서 500엔(약 5700원)에 팔렸다. 농가(단위농협)→도매법인→도매시장→수퍼 등 유통과정이 3단계밖에 되지 않아서다. 우리나라와 비교하면 4~5단계나 적다. 지바현 쇼이카고 직거래 장터에선 배추가 유통마진이 거의 없는 250엔(약 2850원)에 판매됐다. 유통 단계를 2단계로 줄였기 때문이다. 현장에서 만난 주부 우사미 마사코(宇佐美雅子·44)는 “생산자들이 가격을 정하기 때문에 저렴하면서도 믿을 수 있다”며 “직거래 장터에 일주일에 두 번은 꼭 오게 된다”고 말했다.

 쇠고기 역시 마찬가지다. 7일 축산농 김춘대(68)씨가 충남 논산 우시장에서 425만원에 판 거세우는 소비자의 장바구니에 담기기까지 무려 9단계의 과정을 거쳤다. 이 과정에서 고기 값은 도축 때보다 4배 넘게 치솟았다. 세계적인 쇠고기 수출국가인 호주의 경우 소 사육에서 도매까지 한 회사가 일괄적으로 관리한 뒤 소매상으로 직접 넘기는 2단계 유통구조다.

 지난달 27일 호주 퀸즐랜드주 브리즈번에서 100㎞ 떨어진 JBS오스트레일리아 ‘비프시티’ 공장.

 호주에서 가장 큰 쇠고기 공급처인 이 회사는 목장·비육장·도축공장·가공공장·도매업체까지 자체 운영한다. 저스틴 매코믹 비프시티 공장장은 “중간에 낀 사람이라곤 없다(There is no middle man)”며 “수수료를 더 붙이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라고 말했다.

 이렇다 보니 호주의 경우 유통 단계를 거치면서 오르는 쇠고기 값은 산지 가격의 2배 정도다.

 이처럼 주요 선진국에 크게 뒤처진 신선식품의 낙후된 유통 현실을 감안해 박근혜 대통령이 13일“현재 최대 7단계에 달하는 농축산물 유통구조를 최대 2단계까지 줄이겠다”며 유통구조 혁파에 나섰다.

 그러나 신선식품 산지와 유통 현장에선 “무조건 유통구조를 줄이라는 ‘명령식 정책’만 앞선 채 현장의 문제를 짚지 않으면 유통 개혁이 공염불로 끝날 것”이라고 입을 모은다.

 실제로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은 이전 정부 때마다 시도됐지만 가시적인 성과는 없었다. 노무현 정부는 2005년 농정·농촌 종합대책을 내놓고 농산물 유통구조 개선 등을 추진했다. 이명박 정부 역시 배추·무 등을 비축하는 저온저장 창고 건립 등을 약속했지만 온갖 잡음만 남긴 채 실패했다. 또 역대 정부들이 중간상인들의 독과점과 담합 차단책으로 농협을 중심으로 한 공동판매회사 설립과 대형물류센터 건립을 추진했지만 실제 실행으로 옮겨지지 못했다.

 한국농산업경영연구소 이헌목 소장은 “생산지 제품의 품질을 판정하고, 작황 급변에 따른 리스크(위험)도 나누는 일을 지금은 산지 수집상과 도매시장이 하고 있다”며 “이를 대체할 전문성 있는 대규모 영농법인이 많이 생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계절에 따라 수급이 출렁거리지 않도록 저장 기능을 갖춘 첨단 물류센터를 더 늘리고, 이곳에서 공동 판매까지 겸할 수 있도록 유도하는 것도 빨리 풀어야 할 숙제다.

 동국대 식품과학부 권승구 교수는 “역대 정부처럼 임기 내에 억지로 가시적인 성과를 낼 생각을 하지 말고, 길게 보고 근본부터 개혁하라”고 주문했다.

특별취재팀= 최지영·장정훈·구희령·김영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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