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공무원 노조 너무 서둔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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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어제 대통령직 인수위에서 제시된 공무원노조 허용 방침은 지금까지 정부가 추진해온 방향이나 속도보다 한층 앞서가는 내용이다.

공무원 단체에 '노조'라는 명칭을 사용하게 하고 상급 노동단체 가입도 허용할 경우 공직 사회에 어떤 영향을 미칠지를 고려해 신중한 접근이 필요하다고 본다.

인수위 측은 공무원노조 허용이 노무현(盧武鉉)당선자의 공약이기도 하지만, 시대적.국제적 조류로 볼 때 더 이상 외면할 수 없는 사안이라고 판단하고 있다.

인수위가 교원노조 수준의 노조 활동을 보장하는 방안을 마련한 것은 그동안 공무원들이 징계를 감수하면서까지 노조 결성을 강행하는 등 강하게 반발한 점을 고려한 것으로 보인다.

과거 전교조처럼 큰 비용을 치르고 마지못해 끌려가는 것보다 공무원들의 요구를 과감하게 수용해 불필요한 대립을 줄이겠다는 의지로 해석된다.

그러나 인수위 방안대로 '노조' 명칭을 허용할 경우 공무원의 자리매김이 국민에 봉사하는 자리보다는 노동자라는 지위가 우선시될 수밖에 없다.

지금은 단결권과 교섭권만을 인정한다고 하지만 현실은 이러한 제한이 무의미해지게 흐르게 마련이다. 또 상급단체와 연계해 투쟁을 벌일 경우 공직 사회에 미치는 혼란이 크고, 그 피해는 국민들에게 돌아갈 수밖에 없다.

행자부는 공무원 단결권을 보장하되 '노조' 대신 '조합'이란 명칭을 쓰고 단체행동권을 비롯한 노조 활동도 일부 제한하며 시행 시기도 2006년 이후로 한다는 법안을 국회에 제출해두고 있다.

우리도 공무원노조를 굳이 반대하지 않는다. 다만 공무원의 정치적 중립이 보장되지 않는 상황에서 어떤 형태로든 노조가 설립될 경우 집단 이기주의와 정치적 줄서기가 걱정되는 게 우리의 현실이다.

그래서 시간을 두고 단계적으로 나가는 정부안이 합리적이라고 보았다. 공무원노조 문제는 서두르기보다 앞으로 새 정부 출범 후 입법 과정에서 국민 의견을 충분히 수렴해 결정하는 것이 온당하다고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