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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행복한 책읽기] '오주석의 한국의 미(美) 특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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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주석의 한국의 미(美) 특강/오주석 지음, 솔, 1만5천원

신간은 삼불(三佛) 김원룡, 우현(又玄) 고유섭, 동주(東洲) 이용희 등 한국미술사 첫 세대 저술가들과 구별되는 제3세대 저술가의 등장을 알리는 신호탄으로 읽힌다.

첫 세대들이 한국미의 특징을 '질박한 아름다움' 등으로 성급하게 규정한 뒤 막상 각론 작업에 등한시해온 한계들을 정교하게 보완하는 성격 때문이다.

미술사학자 오주석(47.간송미술관 연구위원)이 책에서 선보이는 주무기는 선배들과 정반대 방향, 즉 '작품 꼼꼼히 읽기'로서의 미술사다.

이 책은 김홍도의 풍속화 몇 장, 혹은 "렘브란트에 한치도 밀리지 않는"(1백68쪽)완성도의 인물화들을 꼼꼼히 읽어내고, 그 안에 숨어 있는 스토리들로 구성됐다.

문제는 그 작업이'숨은 그림찾기'를 넘어 의젓한 삶을 살았던 조선인의 마음 재구성으로 연결된다는 각별한 성취다. 저자가 제2세대 학자들과 구별되는 점도 그 때문이다.

강우방의 진지함, 최완수의 역사학 배경지식, 유홍준의 대중성이라는 특장(特長)을 녹여내 그만의 솜씨로 바꿔 선보이고 있다.

공무원.LG 직원 앞에서 가진 슬라이드 강연에 토대를 뒀기 때문에 더없이 구수하게 읽히는 이 책에서 저자는 옛 그림 감상의 원칙부터 제시한다. 그림 크기의 1.5배 정도 거리에서 작품을 찬찬히 살펴보라는 권유다.

썰렁한 조언이 아니다. 옛그림을 보긴 했으나 제대로 읽어본 일은 없다는 시이불견(視而不見)의 함정에 우리가 빠져왔었음을 김홍도의 '씨름' 등 읽기 과정을 통해 재확인시켜주기 때문이다.<박스 기사>

책의 백미는 뒤편이다. 미술 교과서에 '이재(李縡) 초상화'(작가 미상)로 알려진 이 작품을 치밀하게 읽어내고, 이를 통해 새로운 학설까지 내놓는 과정이 놀랍기 때문이다.

인물화 속의 노인이 노인성 지방종이란 질병을 앓고 있었고, 따라서 이 작품의 주인공은 학계 정설대로 이재가 아니라 그의 손자 이채라고 규정하는 대목은 통쾌하기까지 하다.

이런 규명이 "터럭 한 오라기가 달라도 남이다"고 했던 조선조의 엄정한 회화정신 때문에 가능한 작업이고, 또 저자의 주장이 "우리 것은 좋은 것"이라는 쇼비니즘과 인연이 없다는 점도 우리를 기분좋게 만든다.

눈여겨볼 대목은 신세대들의 관심에서 거리가 있어 보이는 이 책을 저자는 "붉은 악마에게 바친다"고 했다. 히딩크의 말처럼 우리는 (문화에 관한 한)배가 고프고, 그 허기를 제대로 자각해야 하기 때문이라는 게 헌정(獻呈)이유다.

지금이야말로 문화라는 꽃을 피울 때이고, 그 작업을 젊은이들과 함께 하려는 희원이 각별한 마음으로 다가서는 대목이다. 미술사학의 새로운 세대 등장을 알리는 이 책을 제대로 음미하려면 이 저자의 다른 책도 함께 읽어봄직하다.

본격 연구서 '단원 김홍도'(열화당), 명품회화 11편을 꼼꼼히 읽는 실제작업인 '옛 그림 읽기의 즐거움 1'(솔)등이 그것이다.

이 책 제목의 글씨를 써준 이화여대 강우방 교수의 책 '한국 미술, 그 분출하는 생명력'(월간미술, 2002)을 곁들여도 보완이 될 듯싶다. 한편 서울대 동양사학과를 졸업한 저자는 국립중앙박물관과 호암미술관 등에서 큐레이터 생활을 10년 했다.

조우석 기자

*** 김홍도 '씨름' 꼼꼼히 읽어보면…

이 정교하게 묘사된 김홍도의 '씨름' 속의 씨름판은 벌써 한두 시간 전에 시작됐다고 저자는 단정한다. 오른쪽 위 구경꾼을 보라. 갓을 벗은 채 비스듬히 누워있지 않은가.

발이 저린 듯 왼발을 뻗어 주무르고 있는 이도 건너편에 묘사돼 있다. 20명 구경꾼 사이에는 대기선수도 보인다. 왼쪽 발 뻗은 이 앞쪽의 젊은이가 그 사람이다.

갓과 신발을 벗고 긴장된 자세로 앉아있는 것을 보면 그가 틀림없는 대기선수라는 게 저자의 설명이다. 복판의 두 선수 중 앞쪽 선수는 지금 들배지기 기술을 구사하고 있다.

그러면 번쩍 들린 상대는 어느 쪽으로 넘어질까. 왼쪽일 것 같다고? 아니다. 오른 쪽이다. 맨 아래 구경꾼들의 놀란 표정을 유심히 보라.

선수 옆에는 짚신과 고급 가죽신 한짝이 놓여 있는데, 그러면 두 신발은 각기 어떤 선수의 것일까. 또 틀린 그림 하나도 숨어 있다. 그건 책을 통해 각자가 알아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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