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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죽세공은 전국 제일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6면

초겨울 지리산골짜기서 불어오는 눈바람이 제법 쌀쌀하나 남해안에서 섬진강을타고 올라오는 해풍때문인지 하동골짜기의 햇볕은 따사롭다.
하동읍내를 들어서면 내년가을에 준공예정인 경전선이 노반을 반듯이구축, 역터까지 닥아놓았으며 전라도 순천으로 이을 철도교각이 섬진강을 질러 점점이 세워져있다. 해마다 여름이면 노드가 제방을 밀어 붙이던 홍수도 섬진강상류에 다목적「댐」이 세워지면서 금년 여름부터는 홍수에 신경을 쓰지 않아도 좋게 되었다.
하동은 경남의 극서, 지리의 멧부리가 남해에 잠기면서 흘러내린 삼진강을끼고 전남과 경계하고있는 구석진땅. 전면적의 8할이 소백산맥의 발톱인 하동땅은 한때주민의 약 7할이 고향을 등지고 외지로 나가야했던 서러운역사가 있었다.
8·15후 적색분자들이 일으킨 여순반난사건은 그들의 약탈과 방화와 살륙으로 화개·악양·정암 3개면민의 3분의2 이장이 집과 농토를 버리고 고향을 등진일등.
군의 연혁을보면 신라초 한다사군이라 불렸다가 경덕왕때 하동군이라 개칭, 고려현종때 진주에 속했다가 이조태종때 남해현을 병합, 하남현이라 했다.
이조 숙종때 부라하고 부사를 두었으며 1889년에 다시 하동군이되고 1906년 육암면·옥종면 2면을 진주군에서 떼어흡수, 1933연1월1일 김양면의 일부와 남면을 합하여 지금은 1읍11개면이다.
신라 백제때도 섬진강을 두고 국경지대였고 지금은 전남과 경남을 섬진강하나를 두고 경계하고 있다. 섬진강다리가 놓이기 전에는 화개은 격일시장으로서는 우리나라에서 가장발달한 시장.
전남에서 농수산물 임산물등이 강상유와 하구의 노량에서 섬진강을 타고 「하동포구 80리」를 와서 하동신기부두에 물산을 내렸다. 전남과 경남의 교역이 왕성할때는 1백「톤」급 발동선이 내왕했다. 다리가 놓인뒤로는 하루 「버스」63대 「트럭」69대 소형차양 36대가 경남과 전남을 오가면서 여객 1천5백54명 화물 69「톤」을 실어나르고 있다. 북에는 지리산이 척수를 이루고 남으로 금호산 (850m)이 젖가슴처럼 솟아 서로 섬진의 급류를 남해로 흘려보내고 있는것이 하동의 지세이다.
임난때 이충무공이 대첩을 올린곳이 남해노량과 마주보는 하동노량앞바다이며 삼도통제사, 경상우도수군 절도사였던 숭록대부 정기룡장군이 이땅에서 났다.
이러한 역사의 흐름속에 하동군의 내일은 다음 몇가지 대전시책을 성공시킴으로써 군민생활의 배향상을 꿈꾸고있다.
▲??업진학=현재의 2백25만주의 뿡나무에다 내년에 2백만주를 더심고 69연까지는 1천만주를심어 고치8만「킬로」(2만관)를 증산, 6천54호의 농가가 호당 평균3천5백원의 소득을 올리게 될것이며 71연도에 l백만「킬로」의 고치만 생산하면 호당3만7천원의 년간소득을 올릴계획.
▲죽림=군단위로 전국1위이며 도내죽림의 20%가있는 이곳에 내년에 5백정보를 확보, 담양에서 죽세공기술을 도입하여 71연도에는 전국제일의 죽세공 「센터」를 이룩한다.
▲고영토=매장량 1천만「톤」을 현재까지 연평균2만「톤」씩생산, 25만불의 외화획득을 했다. 경전선개통으로 수출「코스트」가 싸지고 전기도입으로 생산시설근대화만 되면 년간 1백만불 이상의 수출을 달성할 수있다.
▲양송이=읍내에 1천6백평의 가공공장을 신설, 금년부터 생산에 착수했다. 71연에는 2만9천평의 생산계획을 세워 50만불수출 목표.
▲하동김=전남간척사업으로 기존양식장이 대부분 매립되어 신양식장을 개설해서 금년은 1만2천불밖에 수출못했다. 71연에는 29만4천불수출을 목표.
▲작설다=국내에서 단한곳뿐인 이곳 화개면에선 예부터 작설다를 왕실에 진상해왔다.
65년부터 인공다원을 개발하고 가공공장도 세워 현재의 50정보에서 71연에는 2백정보로 확장, 금년의 6만1천2백「킬로」 3백만원생산을 71년에는 31만「킬로」 1천8백60만원의 수익을 올릴 계획. <송평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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