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운대에 '25억 집' 산 中갑부 "쭈이하오" 찬사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2면

부산 해운대 지역 아파트를 구입하는 중국인과 일본인 등이 늘고 있는 가운데 부산시가 지정한 글로벌 중개사무소 가 등장했다. 일본인 전문 태영부동산 고재석 사장이 12일 매물 안내문을 붙이고 있다. [송봉근 기자]

6일 오후 부산 해운대의 초고층 고급 주거시설인 아라트리움 35층. 거실의 대형 유리창을 통해 탁 트인 해운대 바다와 동백섬을 바라보던 20여 명의 중국인이 엄지손가락을 치켜세웠다. “쭈이하오(最好)~. 쭈이하오~.” 전망이 최고란 찬사였다. 이들은 기업형 식당이나 부동산업을 하는 수백~수천억원대의 재력가들이라고 안내인이 귀띔했다. 이 아파트 330㎡(99평) 한 채를 25억원에 산 홍콩의 부동산업자 도라후이(51·여)는 “해운대는 경치·기후 등 주거환경도 만점이고 투자 대상으로도 매력적”이라고 말했다.

 해운대의 최고급 아파트로 꼽히는 이곳은 아직 입주 전인데도 중국인 8명과 매매계약을 끝낸 상태다. 모두 224㎡(68평)나 330㎡ 평형으로 15억~25억원대다. 분양대행사인 마이소르가 1월 하순 이틀 동안 홍콩 침사추이의 특급호텔에서 중국 재력가 300~400여 명을 상대로 부동산 설명회를 연 성과다. 4, 5월에도 60여 명이 계약을 하러 부산에 온다.

김윤섭(59) 마이소르 총괄본부장은 “중국 본토의 정치·경제 상황에 불안을 느껴 재산을 해외로 옮기고 싶어 하는 홍콩인들이나 스모그· 황사 등 환경 문제로 해외에 세컨드 하우스를 갖기 원하는 중국 본토 재력가들이 해운대에 투자하고 있다”고 말했다. 지난해 아파트를 산 하워드 황(60)은 “해운대 아파트는 가격이 홍콩의 5분의 1 정도여서 투자가치가 높고, 부산의 의료·문화·관광 인프라도 잘 갖춰져 있어 만족스럽다”고 말했다.

 2011년 11월 입주를 시작한 인근 두산위브더제니스(80층·1780세대)와 아이파크(72층·1631세대) 아파트에는 중국·일본·러시아 등 외국인들이 전체 입주자의 8~10%를 차지한다.

대체로 중국인은 투자와 휴양 목적으로, 2011년 동일본 대지진을 겪은 일본인은 세컨드 하우스 개념으로 해운대에 아파트를 장만한다. 또 블라디보스토크와 부산을 오가는 선박회사 선주 등 극동 러시아의 부호들도 해운대에 아파트를 사놓고 추운 겨울을 부산에서 보낸다.

 개인이 아닌 외국 기업의 부동산 투자도 증가세다. 2017년 우동에 들어서는 아파트· 호텔 복합시설인 엘시티(101층)는 지난해 중국 상하이의 A부동산 기업으로부터 4000억원대의 투자를 유치한 데 이어 일본의 호텔기업인 듀플렉스 그룹과 수천억원대의 투자협약을 진행 중이다. 올 1월에는 글로벌 기업인 일본 세가그룹이 해운대 벡스코 앞 상업시설 부지 9911㎡를 사들여 39층 규모의 특급호텔을 짓기로 했다.

 동북아 ‘큰손’들의 투자 러시는 해운대 부동산 경기가 다른 지역과 달리 ‘나 홀로 호황’을 누리며 국제도시로 뻗어가는 데 기여하고 있다. 이에 따라 부산시는 해운대와 기장 지역 중개업소 19곳을 ‘글로벌 중개사무소’로 지정해 외국인들의 부동산 상담에 편의를 제공하고 있다.

풀어야 할 과제도 있다. 일정 금액 이상의 부동산을 매입하면 장기 거주비자를 주고, 향후 영주권을 주는 ‘부동산 투자이민제’가 제주도나 강원도 평창과 달리 부산에선 시행되지 않고 있다. 김윤섭 마이소르 본부장은 “중국의 큰손들이 영주권을 받으면 부산은 물론 국내 곳곳에 연쇄적인 투자를 할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글=위성욱 기자
사진=송봉근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