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공공기관 2000여 명 인사 태풍권 … 대통령, 전문성 강조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05면

서울 송파구 조세연구원에 마련된 공공기관평가단 사무국은 12일 하루 종일 문턱이 닳도록 붐볐다. 공공기관장의 연임에 결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2012년 경영실적 보고서를 제출하는 기관들이 줄을 이었기 때문이다. 박근혜 대통령이 공공기관의 낙하산 인사를 거듭 비판하고 전문성을 강조한 다음 날이어서 보고서 제출자들 사이에는 긴장감이 돌았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새 정부가 대대적인 물갈이 인사를 예고했기 때문에 사활을 걸고 준비했다”고 말했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공공기관장 ‘심판의 날’이 임박했다. 11일 박근혜 대통령이 “국정철학을 공유할 수 있어야 함께 일할 수 있다”고 공언하면서 초대형 인사태풍이 불어닥치게 됐다. 공공기관들은 ‘올 것이 왔다’는 분위기다. 특히 이명박 정부에서 임명된 기관장들이 좌불안석이다.

 아직 인사태풍의 범위와 파장은 불확실하다. 불과 며칠 전까지만 해도 ‘낙하산 인사를 반대해온 박 대통령이 기관장 교체를 최소화할 것’이라는 관측이 유력했다. 공공기관을 관리하는 각 부처에서도 특별한 움직임이 드러나지 않았다. 12일에도 공공기관장 임명 기준을 관리하는 기획재정부는 “과거 정부에서 일률적인 잣대로 교체가 이뤄지지는 않았다. 누가 남고 누가 떠날지 예단할 수 없다”는 원론을 되풀이했다.

 하지만 정부 주변에선 295개 대형 공공기관 가운데 대통령의 인사권이 직접적으로 미치는 117개 기관이 1차적인 물갈이 타깃이 될 것으로 보고 있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시스템 알리오넷에 따르면 30개 공기업과 87개 준정부기관이 여기에 해당된다. 이들 중 총수입액이 1000억원을 넘고 직원수가 500명이 넘는 55곳은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에 따라 대통령이 직접 임명한다. 이 기준에 미달하는 62개 기관도 소관 부처의 장관이 대통령에게 임명을 제청토록 돼 있다.

 기타공공기관으로 불리는 178개 기관의 장도 개별법에 따라 대통령이 임명하는 곳이 많다. 여기에 알리오넷에 올라 있지 않은 정부의 각종 산하단체와 포스코·KT 같은 일부 민간기업, 대형 금융기관까지 감안하면 물갈이 대상 기관은 수백 곳으로 늘어난다.

 물갈이의 영향을 받는 인원은 기관 수보다 훨씬 많다. 기관장뿐 아니라 감사·임원·사외이사까지 정부의 입김이 닿기 때문이다. 이들을 포함한 전체 교체 대상은 최소 2000명을 넘는다. 이들 모두 교체되는 것은 아니지만 박 대통령이 낙하산 인사의 문제점을 거듭 거론한 점을 미루어 전문성이 없으면 물갈이될 가능성이 크다.

 이들의 운명은 사실상 정부의 뜻에 전적으로 달려 있다. 기관장은 형식상 3년 임기를 보장받지만 매년 경영평가를 받아야 한다. 정부의 뜻을 거스르고 자리보전을 하기가 쉽지 않은 구조다. 특히 한국전력·가스공사·석유공사·인천국제공항공사 등의 대형 공기업일수록 교체 태풍권에 들어가기 쉽다. 국민생활과 직결되고 덩치가 크다보니 기관장이 되려는 후보도 많기 때문이다.

 정부 업무를 위탁수행하거나 수조~수십조원의 기금을 운영해 국민생활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는 준정부기관도 물갈이 영향권에서 벗어날 수 없다. 한국연구재단·한국장학재단·한국농어촌공사·대한무역투자진흥공사·한국가스안전공사·국민건강보험공단·한국소비자원·한국거래소·한국철도시설공단 등이 그런 경우다. 수출입은행·한국투자공사(KIC)처럼 개별법으로 관리되는 기타공공기관도 마찬가지다.

 공기업은 아니지만 연봉이 높은 23개 금융회사와 협회도 대통령 인사권의 영향을 받는다. 정부가 소유한 우리금융지주·산은금융지주·기업은행은 물론이고 정부 지분이 없는 KB금융지주·농협금융지주·은행연합회·생명보험협회·손해보험협회·여신금융협회·저축은행중앙회 등에도 정치권이나 공무원 출신이 임명돼왔다.

 급격한 교체 바람에 대한 반발 분위기도 있다. 한 공공기관 관계자는 “당초 임기를 마칠 것이라는 말이 나오더니 갑자기 공공기관장 물갈이 차원에서 교체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가 나와 직원들이 혼란스러워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동호·윤창희·이태경 기자

[관계기사]

▶ 개혁·전문성 내세운 MB, 결국 측근들 '낙하산 잔치'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