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크라잉 넛이 이소룡을 만날 때 '이소룡을 찾아랏!'

중앙일보

입력

카메라는 서울 시내를 정신없이 질주한다. 도시 곳곳의 모습이 노출되고, 외국인들의 인터뷰가 흘러나온다. 국적에서 언어까지 이들은 각양각색이다. 그리고 크라잉 넛의 공연장면이다. 열정적이고 시끌벅적한 리듬과 악기소리, 그리고 관객들의 환호성이 터져나온다. 그리고 다시 도시, 외국인, 크라잉 넛이 차례로 등장한다. 자, 과연 서울 시내 한복판에서 이소룡을 찾아헤매는 여정은 성공할수 있을까?


디지털 영화 '이소룡을 찾아랏!'의 도입부는, 속도감이 넘친다. 서울의 풍경과 사람들 인터뷰를 나란히 병치한 이 도입부는 영화의 흐름을 미리 제시한다. 어설픈 논리로 이해하려 들지 말 것. 서울이라는 장소의 숨은 비밀을 캐낼 것. 그리고 무엇보다 크라잉 넛의 유쾌한 일상을 들여다볼 것. 이런 안내문을 통과한 뒤 우리는 비로소 영화를 만날 수 있다. '이소룡을 찾아랏!'은 상업적인 포장도 허술하고 걸작이 되려는 욕심이 없는 작업이다. 극히 유쾌하고 때로는 어처구니없는 유머가 있다. 빌딩 화장실에 몰래 숨어들어간 크라잉 넛은 경비 아저씨에게 혼이 난다. "경제발전" 운운하는 설교를 들으면서 말이다. 영화는 이렇게 썰렁하면서, 실험적인 기운을 품고 있다.

서울 시내에선 의문의 사건이 발생한다. 이름모를 바이러스로 사람들이 하나둘 죽어사는 것. 사체들이 연이어 발견되고 현장에 남아있는 유일한 증거는 이소룡과 관련된 것들이다. 경록과 상면을 비롯한 크라잉 넛 멤버들은 수사에 착수한다. 홍대 앞부터 수사를 펼쳐나간 이들은 하나씩 사람들을 만난다. 무술체육관 사범에서 빌딩경비 아저씨, 그리고 다리없는 아가씨에 이르기까지. 영화는 크라잉 넛의 수사과정과 함께 이들의 공연을 중간중간 비춘다. 때로 크라잉 넛의 멤머들은 오락실에서 게임을 하면서 시간을 보낸다.

'이소룡을 찾아랏!'은 다큐멘터리와 픽션 사이에서 묘한 균형을 잡는다. 크라잉 넛의 공연장면과 이들 일상을 비춘 화면은 다큐적인 생생함을 담고 있지만, 영화 전체가 그런건 아니다. 살인사건에 얽힌 미스테리가 부각되고 있으므로. 의문의 살인이 연이어 발생하자 크라잉 넛의 멤버들은 탐정을 자처하고 수사를 벌인다. 이 과정은 곧 '이소룡을 찾아랏!'이 현재의 서울, 그리고 한국이라는 공간에 대해 고민하는 작업임을 의미한다.

영화를 연출한 이는 강론 감독. 연출과 뮤직비디오 작업을 주로 했던 감독은 '이소룡을 찾아랏!'에서 자신의 취향을 감추지 않는다. 인디밴드와 B급문화, 그리고 이소룡에 대한 개인적 애정을 피력하는 것. 감독은 "이소룡은 어릴적부터 나의 아이콘이었다. 이소룡이라는 존재는 여러 가지의 맛, 다양한 스펙트럼을 한 몸에 가지고 있는 일종의 상징이라고 생각했고 서울이라는 공간을 표현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판단했다"고 말한다. 영화에서 이소룡은 하나의 상징처럼 나온다. 서울이라는 공간을 탐색하는 영화에서, 이소룡은 무국적의 상징이자 대중문화의 아이콘처럼 보인다. 영화에서 이소룡에 얽힌 미스테리, 살인극의 의문은 약간 어이없게 실마리가 풀리지만 긴장감을 부여하는 장치가 되고 있음은 분명하다.

무엇보다 '이소룡을 찾아랏!'은 음악영화다. '말달리자'와 '이소룡을 찾아랏!', 그리고 '하수구' 등 크라잉 넛은 특유의 펑크록을 들려준다. 이들의 귀여운 외모, 조금 어리숙해 보이지만 음악에 대해 진지한 열정을 지닌 모습도 영화에 투영된다. '이소룡을 찾아랏!'은 디지털 영화 특유의 현장감과 거친 외양을 하나의 매력으로 승화시킨다. 숨가쁜 공연현장과 살인극의 추적, 그리고 크라잉 넛의 음악적 고민을 하나로 엮으면서 영화는 시작부터 끝까지 내내 질주한다. 여기서 매끈한 드라마나 스타급 연기자를 기대하면 실망할지도 모른다.

이제까지 크라잉 넛의 음악에 관심을 보였던, 혹은 그들의 팬인 사람이라면 '이소룡을 찾아랏!'은 인디영화의 좌충우돌하는 에너지를 담은, 흥미로운 작업이 될 것 같다. 아니면 (크라잉 넛에 대해 전혀 관심이 없는 이라면) 아예 무시해버리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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