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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찻길 위 행복주택 역세권 함께 개발하면 공약대로 행복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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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4면

서울 지하철 2호선 양천구청역. 역사 밖으로 나오면 남서쪽으로 10여 가닥의 철로가 부채꼴로 넓게 펼쳐져 있는 게 보인다. 운행을 마친 지하철을 정비하는 서울메트로(서울지하철공사) 신정차량기지다.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행복주택’의 모델인 서울 양천구 신정동 양천아파트의 모습. 서울 지하철 2호선 신정차량기지 위에 말뚝을 촘촘히 박은 뒤 그 위에 아파트를 지었다. 1995년 완공된 이 아파트 단지는 장기 공공임대 2298가구로 구성돼 있다(맨 위). 계획이 무산된 신정차량기지 복합개발 조감도. [김도훈 기자]▷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차량기지의 끄트머리엔 15층짜리 16개 동으로 구성된 양천아파트 단지가 자리잡고 있다. 양천아파트는 일반 아파트와 달리 땅 위가 아닌 공중에 떠 있는 듯한 모습이다. 차량기지 위에 높이 8m짜리 콘크리트 말뚝 1만7500개를 박은 뒤 인공대지(데크) 7만7000㎡(약 2만3000평)를 만들고 그 위에 아파트를 지었다. 1995년 완공된 이곳은 저소득층에게 20~50년 동안 싼값에 빌려주는 장기 공공임대 아파트 2298가구로 구성돼 있다. 이 아파트를 지을 때는 인공대지가 건물 무게를 오랫동안 견딜 수 있도록 특수 제작한 벽돌(기존 벽돌 무게의 30%)을 썼다.

 양천아파트는 박근혜 대통령의 대선 공약인 ‘행복주택 프로젝트’의 모델이 되는 곳이다. 지난해 9월 당시 대선 후보였던 박 대통령은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집 걱정 덜기 종합대책’의 하나로 “임기 5년간 55개소, 20만 가구의 행복주택 건설을 추진하겠다”고 약속했다. 이어 “저렴하면서 질 좋은 임대주택을 공급하는 데 가장 큰 걸림돌은 높은 토지매입비”라며 “이 문제를 철도부지 상부에 인공대지를 조성해 해결하겠다”고 강조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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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하지만 박근혜표 대표 주거복지 공약인 ‘행복주택’은 시작도 하기 전부터 난관에 부딪히고 있다. 임대주택 건설에 대한 인근 지역 주민들의 반발 우려와 막대한 사업비에 따른 토지주택공사(LH) 등 공기업 재무구조 악화 가능성 때문이다. 주무 부처인 국토해양부는 최근 행복주택 건설계획을 대선 공약인 ‘순수 임대주택’이 아닌 ‘역세권 복합개발’로 바꿔서 추진하기로 입장을 정리했다.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11일 “행복주택은 기존의 임대주택처럼 지역 주민들에게 거부감을 주는 장소가 아니라 환영받을 수 있는 사업이 돼야 한다”며 “(역세권) 복합개발을 통해 지역의 랜드마크(명소)가 되도록 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사업의 수익성을 높이기 위해서도 복합개발이 필요하다”며 “국민연금 등 연기금이나 민간 사업자를 참여시키려 해도 일정한 수익성이 보장되지 않으면 불가능하다”고 지적했다.

 서승환 국토부 장관도 지난 6일 국회 인사청문회에서 “(행복주택에 대한) 우려에 대해선 충분히 고민하고 있다”며 “복합개발 쪽으로 가서 슬럼화되지 않게 하겠다”고 밝혔다. 이어 “(주택 유형은) 소형으로 개발해서 1인 가구, 대학생, 신혼부부, 은퇴한 노인 등 다양한 계층이 섞여 살게 하겠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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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행복주택 대상지에 대해 국토부 고위 관계자는 “대선 공약대로 우선 5개 시범지구를 선정하기 위해 현재 다양한 지역을 놓고 검토 중”이라며 “다만 지방을 제외한 수도권으로 한정할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공약에서 제시한 ‘올 하반기 1만 가구 착공’이란 일정까지 맞출 수 있을지는 장담하기 어렵다”고 덧붙였다.

 행복주택 건설지는 당초 대선 공약집에선 ‘철도부지 상부’라고 밝혔지만 지난달 인수위 국정과제 보고서에선 ‘철도·공공 유휴부지’로 확대했다. 철로 옆에 놀고 있는 땅도 포함된다는 의미다. 철로 위에 인공대지를 세우는 것만으로는 ‘임기 내 20만 가구 건설 추진’이란 목표를 달성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이와 관련, 한국교통연구원은 2011년 ‘철도부지의 입체 복합개발을 통한 도심 주거공간 조성’이란 보고서에서 서울 서대문구 가좌역을 비롯해 신촌·노량진·망우·영등포·신도림역과 이문차량기지를 후보지로 제시했다.

 그러나 부동산 전문가들 사이에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한 곳도 제대로 하기가 쉽지 않은 복합개발 사업을 5년간 55개소에 걸쳐 벌이는 것이 가능하겠느냐는 것이다. 신정차량기지에서 서울메트로와 서울시가 추진하던 복합개발 계획이 무산된 것이 대표적인 실패 사례다. 신정차량기지 복합개발은 2009년 오세훈 전 서울시장의 ‘서남권 르네상스 프로젝트’의 핵심사업으로 선정됐다. 철로 위에 지어진 양천아파트 옆에 추가로 13만㎡의 인공부지를 조성해 쇼핑센터·오피스텔·문화공연장·체육시설 등을 건설할 계획이었으나 현실성이 없다는 이유로 2012년 사실상 백지화됐다. 행복주택의 유일한 모델로 알려진 곳에서마저 주거와 상업시설을 모두 갖춘 복합개발이 성공하지 못한 것이다. 신정차량기지가 있는 양천구청역은 지하철 2호선 신도림역과 5호선 까치산역을 잇는 지선이어서 지하철 이용객들의 왕래가 적은 편이다.

 교통연구원이 사업 후보지로 제시한 서울 경의선 신촌역사 복합개발도 자세히 들여다보면 성공하기 어려운 여건이란 것이 전문가들의 냉정한 평가다. 2006년 신촌밀리오레란 이름으로 문을 연 신촌 민자역사에는 현재 상인들이 속속 장사를 포기하고 떠나면서 비어 있는 점포가 수두룩하다. 사람들의 왕래가 잦은 지하철 2호선 신촌역과 달리 이용객이 많지 않은 경의선 지상 신촌역에 무리하게 대형 상가를 지은 것이 원인으로 지적된다. 해당 사업자는 허위·과장 광고로 상가를 분양했다는 이유로 공정거래위원회의 제재(시정명령)까지 받았다. 이 회사는 경의선 복선전철화 사업이 완료되면 10분 간격으로 전철이 다닌다고 광고했으나 사실 신촌역은 복선전철화 사업구간에 해당되지 않았기 때문이다.

 함영진 부동산114 리서치센터장은 “5년간 20만 가구라는 물량을 채우기 위해 55곳에서 동시다발적으로 사업을 추진하기는 현실적으로 쉽지 않다”며 “우선 시범사업을 통해 확실한 모델을 보여주고 차근차근 사업을 추진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말했다. 그는 “현재 국내 시공업체의 기술 수준으로 철로 위에 아파트를 짓고 소음을 최소화하는 것은 충분히 가능하겠지만 문제는 경제성”이라며 “복합개발의 수익성을 위해 상업시설의 비중을 늘리면 정작 서민을 위한 임대주택의 비중은 줄어들 우려도 있다”고 덧붙였다.

주정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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