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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마다 설치된 '심장충격기', 역무원 조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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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서울 시청역에 설치된 심장 자동제세동기(AED) 앞으로 시민들이 지나가고 있다. AED 설치가 늘고 있지만 사용할 줄 아는 시민이 많지 않은 실정이다. [김도훈 기자]

11일 오후 2시 서울역 역무실 앞에 설치된 철제 캐비닛에는 ‘AED(심장 자동제세동기)’라는 글씨가 선명했다. 캐비닛 유리창 안쪽에 노란색 플라스틱 가방 하나가 있었다.

 이곳을 지나던 회사원 김세호(54)씨에게 “무슨 장치인 줄 아느냐”고 물었다. 김씨는 “이곳을 자주 지나는데 AED가 있는지도, 뭔지도 전혀 몰랐다”며 “사용법을 모르는데 사고가 난다고 쓸 수 있겠느냐”고 말했다. 신용산역과 시청역에서 만난 시민 12명 중에서 AED를 아는 사람은 단 2명에 불과했다. 지하철 2호선 신촌역 인포메이션센터에 제세동기의 위치를 묻자 역무원은 “내가 여기 직원인데 들어본 적이 없다”며 “그게 뭔데 지하철역에 설치돼 있느냐”고 되물었다.

 지난해 10월 이전까지 AED가 설치된 전철역은 삼성·강남·선릉·고속터미널역 등 4곳뿐이었다. 하지만 서울메트로와 서울도시철도공사가 서울시의 예산 지원을 받아 10월부터 12월 사이 각각 119개 역과 139개 역에 1~2대를 설치했다. 서울시 전체로는 2746개(전국 6502개)가 설치돼 있다. 그러나 승객은 물론이고 역무원조차 존재를 모르거나 사용법을 알지 못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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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해 말 서울 동작구의 한 지하철 역에서 40대 남성이 출근길에 심장이상으로 쓰러진 뒤 숨졌다. 역내에 AED가 있었지만 이를 활용한 응급조치를 할 줄 아는 이가 없어서였다. 당시 출동한 구조대원은 “심장이상이 발생한 지 4분 안에만 제세동기를 이용하면 생존 확률이 80%나 된다”며 “사용법만 알았더라도 살릴 수 있었을 것”이라고 말했다.

 또 다른 다중이용시설인 체육관도 사정은 마찬가지였다. 올 초 중랑구의 다목적체육관에서 배드민턴을 치다 쓰러진 유모(57)씨. 그는 심폐소생술협회 회원인 최광엽(51)씨의 도움으로 목숨을 건졌다. 최씨는 “불과 10m 앞에 제세동기가 있었다”며 “심폐소생술을 하며 주변 사람들에게 그걸 갖다 달라고 했지만 열댓 명이 아무도 모르더라”고 말했다.

 현행법상 ▶여객항공기 ▶일정 규모 이상의 철도역사 ▶고속터미널 대합실 등 교통시설에 AED 비치가 의무화돼 있다. 지난해 8월부터 AED 설치 의무대상은 500가구 이상 공동주택으로 확대됐다. 서울 노원구의 월계주공아파트는 1, 2단지를 합치면 총 3500가구에 달하는 곳이지만 제세동기가 없다. 이응선 관리사무소장은 “아파트에선 주민들이 구입 비용 일부를 부담해야 하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제세동기 가격은 대당 250만원 수준이다.

글=민경원·차상은·정종문 기자
사진=김도훈 기자

◆자동제세동기(自動除細動器·Automated External Defibrillator)=심장마비나 심실·심방의 박동 빈약 등 부정맥을 보이는 심장에 고압전류를 극히 단시간 흉벽(가슴 둘레를 이루는 벽)을 통해 흘려 보냄으로써 정상적인 맥박으로 회복시키는 기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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