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군부 내 대표적 ‘김정은 맨’ … 대남 트러블 메이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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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찰총국의 공격으로 두 동강 나 가라앉았던 천안함이 인양돼 바지선에 실려 있다. 앞부분은 기관, 그 뒤 포장으로 가린 곳은 절단면이다. [중앙포토]

북한 노동신문은 지난 9일자에 ‘무도의 첫 포성을 기다린다’는 글을 실었다. 무도는 북한군 최고사령관 김정은(29)이 7일 방문해 “우리 식 전면전을 개시할 만단(만반)의 준비가 됐다”며 전쟁 채비 종료를 선언한 곳이다. 대연평도와 마주한 이 섬은 2010년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 때 북한군의 주력 부대가 있었다. 김정은이 지난해 8월 첫 방문 때 칭호를 내려 ‘영웅 방어대’로 불린다. 북한이 노동당 기관지를 통해 서해 최전방 무도 방어대에서 대남 도발의 첫 신호탄이 오를 것임을 예고한 셈이다.

최근 김정은의 행보는 대남 호전성을 한껏 과시하는 쪽에 초점이 맞춰진 양상이다. 지난달 말 공군 훈련 참관 때는 대남 기습침투용 AN-2 항공기도 등장했다. 시속 160㎞의 저속·저공비행에 기체가 목재·가죽 등으로 이뤄져 레이더 탐지가 어렵다. ‘맞춤형 대남 기습’에 쓰일 공산이 커 우리 군이 대응책에 부심하는 수송기다. 200m의 짧은 이착륙 거리 때문에 수도권의 골프장에도 내릴 수 있다. 김정은은 “전투력을 총폭발시켜 놈들이 정신 차릴 새 없이 호되게 답새기고(몰아세우고) 침략의 아성을 흔적도 없이 날려버려야 한다”고 강조했다. 7일 북한군 서남전선 최남단 무도·장재도 방어대를 방문한 건 그 정점을 찍은 것이라 할 수 있다.

김정은이 서명한 작전계획에 따라 전면 대결전에 돌입했다는 주장도 북한 선전매체에 나왔다. ‘최고사령관 동지 명령만 내리시라’와 같은 구호도 등장했다. 북한군 장성 강표영은 8일자 노동신문에서 “타격 목표를 확정한 대륙간탄도미사일(ICBM) 등이 핵탄두를 장착하고 대기 상태”라고 위협했다. 마치 전쟁 전야의 긴장이 느껴진다.

김정은 무도 방문 때 바로 옆에서 대화
상황이 이렇게 되자 우리 정부와 관계당국은 부산해졌다. 권력 교체기를 틈탄 북한의 기습 도발이나 국지전 성격의 위기상황 또는 다중 이용시설에 대한 테러 등의 위협이 현실화할 수 있다는 점에서다. 청와대 외교안보실이 아직 제대로 가동하지 못하고 있고, 국방부 장관과 국가정보원장도 청문회 절차가 마무리되지 않아 어정쩡한 상태다. 박근혜 대통령도 김정은의 무도 방어대 방문 사실이 알려진 8일 충남 계룡대에서 열린 장교 합동 임관식에 참석한 뒤 헬기로 돌아와 청와대 지하 벙커를 찾았다. 국가안전보장회의(NSC)를 주재하기 위해서다.

이런 정세 속에서 우리 군과 정보당국이 주목하는 북한 군부 인사가 김영철 정찰총국장이다. 그가 2010년 3월 천안함 폭침과 같은 해 11월 연평도 포격 도발을 총지휘했다는 판단에서다. 무엇보다 지난 5일 ‘정전협정 백지화’를 주장한 북한군 최고사령부의 성명을 김영철이 직접 관영 조선중앙TV에 나와 발표한 배경이 눈길을 끈다. 김영철은 최고사령부 상징 마크와 각 부대 깃발을 배경으로 “우리 식의 정밀 핵 타격 수단으로 맞받아치게 될 것”이라고 목소리를 높였다. 당국은 그가 정찰총국장으로 ‘최고사령부 대변인’ 역할을 겸하고 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본다.

김영철은 요즘 김정은의 공개활동 때 지근 거리에 자리한다. 최측근인 최용해(63) 군 총정치국장과 장성택(67·김정은의 고모부) 국방위 부위원장 다음 순서다. 7일 무도 방어대 방문 때는 두 사람을 제치고 김정은 옆에 서서 이야기하는 장면도 조선중앙TV에 드러났다. 김영철은 군부의 대표적인 ‘김정은의 사람’이다. 은둔의 후계자이던 김정은이 공개 석상에 처음 등장한 2010년 9월 노동당 3차 대표자대회 이후 승승장구했기 때문이다. 당시 김정은의 첫 직책으로 노동당 중앙군사위 부위원장 자리가 주어졌고, 김영철은 당 중앙군사위원에 올랐다. 김정은은 지난해 2월 김영철을 북한군 대장에 진급시켰다.

잠시 석연치 않은 ‘계급 강등’도 있었다. 지난해 11월 그는 갑자기 중장 계급장을 달고 나타나 우리 정보당국을 긴장시켰다. 북한군 장성 계급은 별 하나부터 소장-중장-상장-대장(우리 군은 준장-소장-중장-대장) 체제여서 두 계급이나 떨어진 것이다. 그는 지난달 말 김정은의 공훈국가합창단 공연 관람 때 별 네 개를 달고 나와 복권이 확인됐다. 정부 당국자는 “최측근인 최용해 총정치국장도 차수(대장 바로 위 계급)에서 대장으로 강등됐다 회복됐다”며 “정확한 배경은 알 수 없으나 심각한 상황은 아니었던 것으로 추정된다”고 말했다.

남북회담 때 남측 대표 성향까지 빠삭
남북회담이나 군사접촉에 관여했던 인사들은 김영철을 북한 군부 최고의 대남통으로 꼽는다. 정전협정 위반 논란이나 군축 주장, 남북 군사회담 등에서 우리 측 사정이나 전략을 훤히 꿰뚫고 있다는 얘기다. 남북 군사회담에서 김영철과 마주했던 전직 군 고위 관계자는 “서해 북방한계선(NLL) 문제 등 민감한 이슈가 테이블에 올라 남북 간 치열한 설전이 예고될 때쯤이면 김영철이 북측 단장으로 등장하곤 했다”고 말했다. 회담의 흐름을 잘 읽고 남측 대표나 전략요원들의 성향까지도 머릿속에 넣고 있는 듯하다는 설명이다.

그의 프로필만 살펴봐도 어느 정도 짐작이 간다. 김영철은 소좌(우리의 소령) 때인 1960년대 말 군사정전위 연락장교로 일했다. 당시 프에블로호 사건 등 굵직한 사건이 적지 않게 터졌다. 자연스레 북·미 간의 협상이나 우리 군의 움직임 등을 체감하며 북한 군부 중에서 판문점의 정세를 가장 잘 파악하는 인물로 부각됐다. 별 하나를 단 소장으로 인민무력부(우리의 국방부) 부국장을 맡고난 뒤인 90년 9월에는 남북 고위급회담 1~8차 회의 북측 대표를 맡았다. 2000년 4월 남북 정상회담을 위한 의전·경호 실무 접촉 때는 북한 측 수석대표로 나와 군부의 핵심임을 과시했다.

그가 대남 공작과 군사도발의 실무총책으로 지목된 건 정찰총국장에 임명되면서다. 북한은 대남침투와 해외공작을 담당하던 노동당 35호실과 작전부를 당에서 분리해 인민무력부 정찰국으로 통합했다. 다시 이 조직을 확대 개편한 게 정찰총국이고 초대 책임자가 김영철이다. 김정은 시대에 들어 북한 군부는 파워게임의 소용돌이에 휘말렸다. 지난해 7월 군부 최고 실세이던 이영호 총참모장이 전격 해임되는 등 숙청의 피바람이 불었다. 아직도 여진은 계속되는 중이다. 이런 상황에도 김영철은 두터운 신임으로 득세하고 있다. 김정은의 잇따른 강경 행보를 두고 군부 강경파가 생존을 위한 충성 경쟁 차원에서 강경 목소리를 내기 때문이란 분석이 나온다. 일각에선 군부 실세들의 입김에 김정은이 휘둘리는 것이란 관측도 제기한다.

해외 조기 유학에 제대로 된 군복무 경험이 없는 20대 청년 지도자 김정은. 그를 보좌하는 군부의 대남 트러블 메이커 김영철. 서울을 겨냥한 두 사람의 합작품이 무엇일지에 관심이 쏠리고 있다.

이영종 기자 yj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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