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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일류들의 24시] 6. 미국 건축담당 공무원 존 칸델모

중앙일보

입력

미국의 건축 허가 절차는 비교적 유연하지만 공사 감독만큼은 겨울바람처럼 매섭다.

뒷거래는 생각조차 못한다. 감독 과정에서 비리를 저지른 공무원에게는 사법처리는 물론 퇴직 후 연금까지 포기해야 하는 '사회적인 사망선고'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이다.

미 동부 뉴저지주에서 깐깐하기로 알아주는 건축 공무원 존 칸델모가 관내 건축공사장을 돌며 감독하는 과정을 동행 취재했다.

지난해 12월 27일. 뉴저지주 에지워터 보로(한국의 읍에 해당)의 존 칸델모 건축과장은 오전 6시에 집을 나섰다.

이 도시는 인구 1만9천여명의 작은 규모여서 칸델모가 건축 허가와 감독을 병행하고 있다. 그는 이날 하루 동안 다섯군데 공사장의 허가 여부를 결정지어야 했다.

부하직원 10명을 두고 있는 칸델모는 뉴저지주 건설업계에서는 깐깐하기로 이름높다. 별명은 '타이거 인스펙터(호랑이 감독관)'. 지역 건설업계로부터 "허가에는 온순한 양이지만 감독에는 호랑이같다"는 말을 자주 듣는다. 그는 "완공 후 안전은 내 책임이니까 당연히 손톱만큼의 부실도 용납해선 안된다"고 말했다.

칸델모가 연말에 이같은 바쁜 업무일정을 잡은 것은 민원인들 때문이다.

"점검을 내년 초로 미룰 경우 공사도 지연될 게 뻔하지 않은가. 업체들도 내가 연내에 가부간에 결정지어 주길 바라고 있다." 칸델모는 본인도 건축공무원이 되기 전에 10여년간 건설업자로 일한 경험이 있다.

그는 "시나 타운의 건축과장은 해당 분야에서 10년 이상 근무한 경력이 있거나 여섯종류의 건축.토목 관련 자격증 중 3개 이상을 취득한 사람이라야 한다"고 기자에게 설명했다.

오전 7시에 사무실에 도착한 칸델모 과장은 건축점검 나갈 곳의 위치와 점검사항 등을 검토한 후 시장실로 올라가 자신의 일정을 브리핑했다. 사무실을 나선 것은 오전 9시30분.

첫 방문지역인 허드슨 코브 건축현장에 들른 그는 지난해 11월 점검 때 '퇴짜'를 놓은 곳부터 꼼꼼히 살피기 시작했다. 20여분 후 배관공사에 대해서는 OK. 그러나 배관공사 후 콘크리트를 친 부분은 "규정에 어긋나게 마무리됐다"고 지적했다.그는 "콘크리트를 다시 양생시킨 후 다음달 10일 재점검받아라"고 통고한 후 자리를 떴다.

오전 11시30분.두번째 점검 대상인 '리버 스파' 공사현장을 찾은 칸델모는 "분야별 인스펙터들의 1차 점검 결과 전기.배관.엔지니어링 등에서 다 통과됐다"는 현장 책임자의 말을 듣고 해당 인스펙터들에게 일일이 휴대폰을 걸었다.

책임자의 말이 틀림없다는 것을 확인하자 두말않고 허가증에 사인을 해주었다.

어느덧 점심시간. 현장소장이 "같이 식사나 하면 어떻겠느냐"고 제의했지만 칸델모는 "일정이 바빠 미안하다"며 차에 올랐다.

차를 급히 몰았는 데도 세번째 현장에 도착한 시간은 오후 1시30분. 칸델모는 현장 근처의 인스턴트 식품점에 잠깐 들러 칠면조 샌드위치 하나로 점심을 때웠다.

1시40분부터 다시 점검이 시작됐다.

세번째 현장은 단독주택 신축공사장. 소규모 공사라 분야별 인스펙터들이 개입하지 않기 때문에 칸델모가 배관.전기 등을 직접 살폈다. 그리고 나서 "전기공사가 규정대로 돼있지 않고, 비상구 표시등도 밝기가 규정 럭스에 못미친다. 미안하지만 허가할 수 없다"고 건축주에게 통보했다.

난감해진 건축주는 "두시간만 주면 새로 재료를 구입해 보완하겠다"고 신신부탁을 했다. 칸델모는 시계를 본 후 "그렇다면 오후 7시에 다시 들르겠다"고 약속한 후 다음 현장으로 떠났다.

그는 차 안에서 "너무 촉박한 시간에 맞추려 하다간 엉뚱한 부작용을 초래할 수 있기 때문에 좀더 여유를 주었다"고 말했다.

여섯가구용 소형아파트 공사장인 네번째 현장에서 칸델모 과장은 인스펙터들이 앞서 해놓은 점검 결과를 살펴본 뒤 곧바로 허가서에 서명했다. 기자가 이유를 물으니 "미리 인스펙터들에게 휴대전화로 공사현장 상태를 물었더니 다들 '완벽하다'고 대답하더라"고 말했다.

마지막 현장에 도착한 칸델모는 다소 지쳐 보였다. 그러나 규정위반 사항이 발견되자 금세 눈빛이 달라졌다.

그는 현장소장에게 몇가지 미비점을 조목조목 따진 후 그곳을 '재점검 대상'으로 분류했다. 소장은 낯빛이 어두워졌다. 칸델모는 "안됐다는 생각에 보완을 전제조건으로 허가해줄까 하는 생각도 해봤지만, '아무리 귀찮아도 원칙을 지켜야 사고가 나지 않는다'는 내 근무원칙을 고수하기로 했다"고 밝혔다.

그곳에서 다시 20분을 운전해 아까 퇴짜를 놓았던 현장에 들른 칸델모는 비상구 등의 밝기를 직접 재본 후 "이 정도면 됐다"며 합격을 통보했다.

"사실 원리원칙대로 하면 나 자신도 피곤하다. 나는 교통법규에서부터 하다못해 자식들에게 한 작은 약속까지 꼭 지켜야만 직성이 풀린다.왠지 일상의 작은 일들을 소홀히하기 시작하면 결국 내 업무인 건축 감독일까지도 대충대충 처리하게 되고 말 것 같은 느낌이 들어서다."

칸델모 과장이 특히 까다롭게 대하는 부분이 하나 있다. 야간이나 휴일공사 허가다. 그가 주도해 '인근 주택이나 건물들로부터 일일이 양해서를 받아야만 건축허가를 신청할 수 있다'는 규정까지 만들었을 정도다. 주민들에게 방해가 되는 공사는 용납할 수 없다는 이유에서다.그러나 다른 시간대의 건축허가 때는 민원인들과 함께 머리를 싸매고 고민하기도 한다.

칸델모의 연봉은 약 6만달러.건축과장으로서 에지워터 보로로부터 남다르게 받는 혜택이라면 사륜구동 대형 지프차 한대 정도다. 그는 "경찰차처럼 경광등이 부착돼 있어 가끔 시간이 급할 때 요긴하게 쓴다"며 웃었다.

그는 브리지포트대에서 경영학을 전공한 후 럿거스대에서 토지사용법을 다시 공부했다. 건설업계에서 10여년간 잔뼈가 굵은 경력과 건축사.소방사.토목기사 등 6개 자격증을 밑천으로 건축공무원이 됐다. 1999년부터 뉴욕시의 강 건너에 위치한 에지워터 보로의 건축과장 겸 시의회 건축심의위원으로 재직 중이다.

뉴욕=신중돈 특파원 jdshi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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