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을 빛낸 선수들] '잔디 위의 예술가' 미셀 플라티니(1)

중앙일보

입력

'98년 프랑스 월드컵에서 우승한 후 FIFA 랭킹 1위 자리를 단 한차례도 빼앗기지 않고 굳건히 지켜온 프랑스를 일컬어 '예술 축구(Art Soccer)'를 가장 완벽하게 구사하는 팀이라는 말로 대신한다.

지네딘 지단(스페인 레알 마드리드)과 파트리크 비에이라(잉글랜드 아스날)가 이끄는 미드필드진과 티에리 앙리(잉글랜드 아스날)가 이끄는 공격진은 완벽한 화음을 구현해내는 오케스트라같은 느낌을 축구팬들에게 선사, 예술 축구의 진면목을 보여주곤 한다.

프랑스가 98년 월드컵에서 '예술 축구'를 앞세워 우승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시행착오가 있었지만 그 과정과 기간을 단축시키며 프랑스를 현재의 위치에 올려놓은 숨은 공로자가 있다. 바로 '잔디 위의 예술가'라고 불리던 미셀 플라티니(본명: Michel Francois Platini)가 바로 그 주인공.

프랑스 축구사에 있어서 미셀 플라티니는 '중간 가교(架橋)'의 역할로 설명된다. 플라티니는 58년 스웨덴 월드컵에서 쥐스테 퐁텐느를 도와 월드컵 처녀 우승을 프랑스에 선사했던 '어시스트의 귀재' 레이몽 코파의 정통 계보를 이었다.

그를 이어 프랑스 대표팀 중원사령관의 전통은 98년 월드컵에서 프랑스에 두번째 월드컵을 선사하며 최우수선수(MVP)로 선정된 지네딘 지단을 통해 완전한 개화에 성공했다.

프랑스 대표팀 미드필더로 비교되는 세 선수 중에서 가장 불운한 선수는 바로 플라니티. 레이몽 코파는 쥐스테 퐁텐느라는 득점 기계가 있었기에 그의 어시스트가 위력을 떨칠 수 있었고, 지네딘 지단은 티에리 앙리라는 걸출한 스트라이커가 존재했지만 플라티니에게는 아무도 없었다. 그 자신이 그라운드에서 벌어지는 사소한 모든 것을 해결해야 했다.

프랑스 축구인들은 플라티니와 지단 중 어느 선수가 더 뛰어난 선수인가? 라는 질문을 던지곤 한다. 세계 최고의 미드필더를 보유했던 축구팬으로서 누가 더 뛰어난지와 상관없이 비교ㆍ평가하는 순간만큼은 지구상 어느 국민보다 행복하기 때문.

그들은 대체로 "지단이 없는 프랑스는 어쩌면 98년 월드컵에서 우승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플라티니가 없는 80년대의 프랑스 대표팀은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일."이라는 식으로 두 선수에 대한 비교ㆍ평가의 종지부를 찍고는 한다. 그들의 결론을 본다면 지단이 차지하고 있는 프랑스 대표팀에서의 비중보다 플라티니가 차지하고 있는 대표팀에서의 비중이 훨씬 앞섰다는 것을 의미한다.

플라티니는 A매치 72경기에 출장해서 41득점이라는 경이적인 기록을 작성, 미드필더인 동시에 골게터의 1인 2역을 소화했다. 이런 이유로 그는 다른 두 선수에 비해 상대적 우위를 점한것으로 분석되지만 팀 성적의 상대적 빈곤으로 말미암아 평가절하되고 있다.

그의 이름과 곱슬머리에서 느낄 수 있듯, 이탈리아계 혈통을 이어받은 플라티니는 17세되던 72년 프랑스리그의 에이에스 낭스(AS Nancy)에서 데뷔한 후 기량이 급성장,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 대표팀으로 발탁되었고 월드컵을 마친 후 같은 리그의 생 테티엔(St. Etienne)으로 이적했다.

78년 아르헨티나 월드컵은 플라티니에세 값진 경험을 안겨줬다. 당시 프랑스 대표팀은 본선 1조에서 강력한 우승후보인 아르헨티나, 이탈리아와 같은 조에 속해 1승 2패의 참담한 성적을 기록, 본선 1차전에서 탈락하는 불운을 겪었다. 23살의 신예 게임메이커 플라티니도 주로 교체 멤버로 출장 눈에 띄는 활약상을 펼치지 못한 채, 월드컵의 이색적인 분위기를 습득하는 것에 만족해야 했다.

4년이 흐른 82년 스페인 월드컵에서 그는 한층 더 성숙한 선수로 성장, 프랑스의 중원을 지휘하는 플레이 메이커로 다시 한번 월드컵 무대에 도전장을 던졌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