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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카소·샤갈 전북에 내걸어 넉달간 16만 관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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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8면

이흥재 관장이 호안미로의 작품 ‘현자의 돌’을 설명하고 있다. 미로를 비롯해 피카소·샤갈 등의 작품 이 내걸린 세계미술거장전에는 16만여 명의 관람객이 다녀갔다.

지난달 막을 내린 전북도립미술관의 ‘세계미술거장전’이 대박을 터뜨렸다. ‘나의 샤갈, 당신의 피카소’라는 부제가 붙은 전시회는 지난해 11월부터 4개월간 무려 16만여 명의 관람객이 찾아와 8억원 이상의 입장료 수입을 올렸다. 입장료 면에서 당초 예상했던 기대치의 4배를 웃도는 실적을 올린 것이다.

 전시회에 내걸린 작품들은 지방에서 구경하기 힘든 블록버스터급(초대형)이었다. 교과서나 TV에서 본 피카소·샤갈·마네·앤디 워홀·로트레크 등 거장들의 작품 130여 점, 금액으로 환산하면 1000억원대의 작품이 나왔다. 피카소가 말년에 그렸다는 ‘누드와 앉아 있는 남자’는 무려 420억원이나 하는 걸작이다.

 세계미술거장전은 미술 불모지에 새 바람을 일으켰다는 평가도 받는다. 전시회 내내 전주·군산 등 도시에서는 물론 무주·진안·임실 등 농촌지역에 사는 할아버지·할머니들의 발길이 끊임없이 이어졌다.

 “지방 미술관의 벽을 뛰어넘었다”는 찬사를 받는 전시회의 중심에는 이흥재(59) 전북도립미술관 관장이 있다. 그는 외부 기획사의 손에 맡기지 않고 미술관의 자체 기획으로 이 초대형 전시회를 성사시켰다. 또 지구 반대편에 있는 베네수엘라의 문화부·국립현대미술관을 뚝심 있게 밀어붙이고 끈질기게 설득해 지방 미술관으로는 불가능해 보이는 작품들을 들여왔다.

 “전시회를 포함해 행사를 준비하느라 1년간 쏟아부은 땀과 열정이 지난 40년간 흘린 것보다 많습니다. 토·일요일 단 한 번도 쉬지 못했지만 피곤한 줄 몰랐어요. 내가 정말 좋아하는 일에 올인한 덕분이라고 생각해요.”

 이 관장은 40대에 인생의 방향을 튼 ‘늦깎이 미술인’이다. 그는 본래 영어를 전공한 문학도였다. 대학 졸업 후에는 전주 동암고에서 영어교사로 15년간 근무했다. 미술계에 발을 들여놓은 것은 사진을 접하면서다.

 “등산을 좋아해 매달 2~3회 지리산에 올랐지요. 운무에 감싸인 봉우리와 겨울의 순백 설경, 가을의 황홀한 단풍 등 지나치기 아까운 풍경들을 카메라에 담기 시작하면서 미(美)의식에 눈을 뜬 것 같아요.”

 취미로 시작한 사진을 제대로 찍고 싶어 30대 초반에 전주대 대학원 미술학과(사진 전공)에 등록했다. 기왕 시작한 것 체계적으로 공부하자며 다시 동국대 대학원 미술학과의 석·박사 과정을 밟았다. 2000년엔 교사 생활을 접고 대학 강의와 지역방송 문화 프로그램 진행자로 활동하면서 문화계 인사들과 넓고 깊은 인맥을 쌓았다.

 그는 장날 풍경을 담는 사진작가로도 이름이 높다. 각 지역의 5일장을 찾아다니면서 장터의 흥겨운 분위기와 물건을 팔고 사거나 흥정하는 이들의 정겨운 모습을 주로 찍고 있다. 이를 소재로 서양화가인 선기현·김두해씨 등과 매년 ‘3인전’을 열고 있다. 1988년 시작한 전시회는 지난해 25회째 행사를 가졌다.

 이 관장은 “미술관을 지역주민들의 생활 중심 공간이자 동네 도서관처럼 친근한 쉼터로 만들고 싶다”며 “진짜 하고 싶은 일을 가슴에 묻어 둔 채 생활에 쫓겨 어영부영 시간을 흘려보내기에 인생은 너무 짧고 소중한 것 같다“고 말했다.

장대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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