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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편전쟁 후 170년 만에 힘의 역전 중국, 유럽 ‘경제 영토’ 점령 나서다

중앙선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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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2호 01면

유럽 여행차 영국 런던의 히스로공항에 도착하는 순간, 당신은 ‘차이나 머니’를 밟게 된다. 지난해 11월 중국투자공사(CIC·국부펀드)가 공항 지분 10%를 사들였기 때문이다. 공항에 줄 서 있는 ‘블랙캡’(검은색 택시)도 ‘차이나 머니’의 세례를 받았다. 이 택시를 만드는 영국 회사는 지난달 폐업 일보 직전에 지리(吉利)자동차에 지분 20%를 팔아 기사회생했다. 런던의 호텔에 짐을 풀고 샤워를 할 때도 그렇다. 런던 상수도회사인 템스워터의 지분 8.7%를 CIC가 갖고 있다. 최근 새로 지은 집의 주인은 중국계일 확률이 꽤 높다. 부동산업체 나이트 프랭크의 투자분석가 리엄 베일리는 “런던 중심부에서 지난해 신축된 아파트·주택 가운데 5%는 중국 본토인, 16%는 홍콩인, 23%는 싱가포르인에게 팔렸다”고 말했다.

프랑스로 여행지를 옮겨도 비슷하다. 중국인들은 파리 중심부의 호텔이나 세계적 와인 산지인 보르도·부르고뉴 지역의 포도밭을 속속 사들이고 있다. 보르도에선 최근 4년간 30개 이상의 양조장이 중국인 손으로 넘어갔다.

이탈리아 남부 바닷가에 정박 중인 화려한 요트에도 이미 중국의 손길이 뻗쳤다. ‘요트계의 페라리’라고 불리는 ‘페레티’를 만드는 회사의 지분 75%는 지난해 1월 산둥(山東)중공업에 팔렸다. 로마에서 비교적 싼값에 캐시미어 스웨터를 샀다면 ‘메이드 인 이탈리아’이지만 중국산과 다를 바 없다. 피렌체 옆 직물공업도시인 프라토에만 4000여 개의 중국계 의류공장이 있다. 중국산 원단으로 중국인 노동자가 옷을 만든다.

중국의 넘쳐나는 돈과 사람이 유럽 상권을 잠식해 나가고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이후 부쩍 두드러지는 현상이다. ‘명품매장 싹쓸이’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 요즘엔 고급 부동산과 기업들도 거침없이 쓸어 담고 있다. 현찰이 아쉬운 유럽에선 손님을 가릴 형편이 아니다. 각국 정상들이 중국을 찾아가 투자나 수입을 늘려 달라고 호소하기 시작한 지도 오래다. 170여 년 전 아편전쟁을 시발로 중국 땅을 강점했던 서구 열강이 이젠 거꾸로 ‘경제 영토’를 내주고 있는 것이다.

오래전 열강들이 홍콩·마카오·광저우 같은 중국 주변부로 먼저 침투했듯 중국 자본도 유럽의 변방을 집중 공략한다. 남유럽의 사정이 더 절박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국영 해운업체는 2009년 그리스의 최대 무역항인 피레에프스항구의 35년 임차권을 샀다. 27개 유럽연합(EU) 회원국 중 가장 동쪽의 섬나라 키프로스에선 부동산 열기가 뜨겁다. 최근 반년 새 중국인들이 약 2000채의 주택을 매입했다. 키프로스 정부가 지난해 8월 30만 유로(약 4억2000만원) 이상을 부동산에 투자하면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내주기 시작하면서다. 키프로스 영주권은 다른 EU 회원국에서의 장기 체류를 보장해 준다. 스페인 정부는 16만 유로 이상인 집을 사는 외국인에게 영주권을 내주는 법안을 추진 중이다. 그리스·포르투갈·아일랜드 역시 뒤질세라 투자이민의 벽을 낮추고 있다. KORTA 밀라노무역관의 이종건 센터장은 “중국이 연구개발(R&D)을 통해 단시간에 선진국을 따라잡을 수 없다고 판단해 브랜드 가치와 기술력을 보유한 회사들을 작심하고 사들이는 것 같다. 산업 측면에서 한국에 매우 위협적인 현상”이라고 말했다.

차이나 머니는 한국에서도 존재감을 드러낸다. 관광·부동산 분야를 중심으로 중화권의 외국인직접투자(FDI)는 지난해 40억 달러(전체 금액의 24.6%)로 늘었다. 2011년 19억 달러에 비해 괄목할 만하다. 지난해 서울 합정동 메세나폴리스 분양 땐 중국·홍콩에서 20여 명이 방문해 주변 상권 등을 둘러봤다. 제주도는 인기 지역이다. 그래선지 베이징·상하이·광저우·홍콩 등에선 한국 부동산 투자설명회가 열린다. 홍콩의 부동산 자문업체 DoB글로벌의 한 관계자는 “지난 1월 말 홍콩 5성급 호텔에서 설명회를 했는데 반응이 아주 좋았다. 이번 주에 고객 10여 명이 제주도·부산·서울을 방문한다”고 말했다. “차이나 머니의 한국 외출은 이제 시작”이라고 전문가들은 전한다. 관계기사 6~7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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