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법원은 왜 불신당할까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12호 30면

우리나라 재판에 관한 두 개의 상반된 조사결과는 우리를 어리둥절하게 한다. 하나는 세계은행이 발표한 각국의 경제활동환경에 관한 보고서(Doing Business report)이고, 다른 하나는 형사정책연구원의 최근 설문조사 결과다.

 세계은행은 지난해 말 한국의 비즈니스 환경을 세계 8위라고 평가하면서, 특히 재판의 효율성과 투명성이 세계 2위라고 발표했다. 우리나라에서 근무하는 외국계 기업의 임원이나 외국 변호사들도 한국의 사법 시스템에 대해 대체로 후한 평가를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런 발표가 잘못된 것만은 아닌 듯하다.

 이에 반해 형사정책연구원의 설문조사 결과에 따르면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도는 7점 만점에 4.42점으로 겨우 낙제점을 면한 정도다. 물론 이보다 낮은 점수를 받은 기관도 많지만 법원이 국민으로부터 충분한 신뢰를 받지 못하고 있음은 분명해 보인다.

 일선에서 재판을 담당하는 판사로서 왜 법원에 대한 국민의 신뢰가 높지 않은가에 관해 곰곰이 생각해 보았다. 우선 법원이 제공하는 서비스의 품질이 여전히 부족하기 때문일 것이다. 우리 법원이 제공하는 재판의 수준이 우리 기업이 수출하는 자동차의 수준은 된다는 말도 있지만, 여전히 많은 국민은 법이 돈이나 권력에 따라 불공정하게 적용되고 있다고 믿고 있다. 충분한 설득력을 갖추지 못한 판결이나 사려 깊지 못한 법정 언행 등에 대한 지적도 계속되고 있다.

 둘째는 법원이 처한 구조적인 상황에서 기인한다. 어떤 종류의 사건이든 당사자는 거의 마지막 단계에서 법원에 오게 된다. 민사사건의 경우 당사자는 변호사나 법무사를 먼저 만난다. 변호사나 법무사도 완벽할 수 없을 터이니 그 대목에서 일정한 양의 불만이나 불신이 쌓일 것이다. 형사사건의 경우 경찰과 검찰을 거치는 동안 많은 국민은 형사사법 시스템의 한계를 체험할 것이다. 그런데 법원은 각 단계에서 쌓인 불만이나 불신이 최종적으로 분출되는 곳이다. 경우에 따라서는 입법이 선행되지 않으면 해결될 수 없는 문제를 법원에 호소하기도 한다. 재판을 담당하는 법관으로서 억울하기도 하지만 우리 사회에서 법원이 감당해야 할 숙명이 아닌가 싶다.

 셋째, 재판 작용의 속성에서 기인한 불신도 있다. 사실을 확정해 법적 판단을 내리는 작용은 내면적 사유 과정을 수반한다. 그러한 내면적 과정은 완벽히 외부로 드러내기 어렵다. 업무처리 과정에 블랙박스가 존재하는 셈이다. 블랙박스가 투명하면 투명할수록 신뢰도가 높아질 텐데, 재판의 속성상 그 내면적 과정을 완전히 열어 보이는 것에는 한계가 있다.

 끝으로 사법불신을 초래하는 원인으로 불완전한 정보를 들 수 있다. 재판을 받아본 경험이 있는 국민과 그런 경험이 없는 국민을 상대로 법원에 대한 신뢰도 조사를 했다. 그 결과 의외로 재판을 받아 본 경험이 없는 국민이 법원을 더 불신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판사의 입장에서 이를 다행이라고 해야 할지 불행이라고 해야 할지 단언하기 어렵다. 하지만 불완전한 정보가 불신을 증폭시킨다는 점만은 분명하다.

 최근 지방의 한 법원에서 지역 유력인사에 대해 보석(保釋)을 허가한 것과 관련해 향토법관이 비리와 유착의 온상인 것처럼 비판하는 내용의 기사를 접한 적이 있다. 심지어는 이참에 일정 지역에서만 근무하는 지역법관제도, 이른바 향판(鄕判)제도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까지 나오고 있다.

 그 사건의 구체적인 내용은 알지 못하지만, 그러한 비판을 하려면 다음과 같은 점도 함께 전달되는 것이 균형에 맞을 것이다. 즉, 보석은 최종적 판단이 아니라는 점, 헌법과 형사소송법은 보석을 통한 불구속 재판을 지향하고 있다는 점, 영국 등 주요 국가의 법관인사제도는 부동성(不動性)의 원칙에 따라 모든 판사가 당초 임용된 곳에서 임기를 마칠 때까지 근무하는 것이 원칙이라는 점, 그럼에도 그 나라들에서 부패나 유착의 문제가 크게 대두되지 않는 이유는 무엇인가 하는 점 등도 함께 고려되어야 마땅하다.

 모든 비판에 완벽한 정확성을 요구하는 것은 자유로운 토론을 위축시킬 수 있으므로 바람직하지 않다. 그러나 비판이 생산적이고 바람직한 결과로 이어지기 위해서는 풍부한 정보와 다양한 반론이 함께 제시되어야 할 것이다. 담론의 수준은 한 사회의 역량의 척도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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