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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일고 경기는 재밌다’ 소리 듣게 새로운 역사 써나갈 것”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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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강돈 북일고 야구부 감독이 연습경기에 앞서 선수들을 한데 모아놓고 주의 사항 등을 당부하고 있다.

빙그레 이글스의 레전드, 영원한 이글스의 2번 타자 … 이강돈 현 북일고 감독을 수식하는 말이다. 이 감독은 이글스를 대표하는 타자로 12년간 1217경기에 출장했다. 통산 타율 2할8푼4리 1132안타, 87홈런, 556타점, 533득점, 88도루를 기록했다. 외야수 부분 3회 골든글러브 수상, 2회 최다안타상 수상, 한국프로야구 사상 두 번째 사이클링 히트를 기록하며 1980년대와 1990년대 초 큰 족적을 남겼다. 지난해까지 롯데 퓨처스 타격코치직을 수행하다 올해부터 고교 야구 전국 최강이라 자부하는 북일고 야구부에 감독으로 임명됐다. 지난달 22일 이 감독을 만나 앞으로의 다짐과 이글스에서의 추억 얘기를 들어봤다.

“프로팀과 달리 고교 야구팀은 신경 쓸 것이 많아요. 투수, 내·외야수 등의 전담코치가 없기 때문에 체계적인 관리가 필요합니다. 잘 육성시켜서 대학이든 프로든 잘 보내는 게 감독으로서의 최우선 과제라고 생각합니다.”

 이날 오후 1시. 천안북일고 야구장에서 만난 이 감독은 자신의 포부를 이렇게 얘기했다. 북일고 야구부는 지난해까지 이정훈 감독의 지휘아래 여러 차례 좋은 성적을 거두며 야구 명문고로서의 입지를 확고히 했다. 특히 윤형배 김용주 등 초특급 선수들을 배출하며 프로와 대학의 등용문으로 거듭났다. 또한 청소년 국가대표의 부름을 받은 학생도 10여 명이나 됐다. 하지만 올해에는 우수 선수들이 대거 졸업해 전력이 많이 약화됐다는 평을 받고 있다. 북일고를 맡으며 명감독으로 거듭난 이정훈 전 감독도 프로야구단 한화 이글스 2군 감독으로 자리를 옮기면서 팀 전체가 약간 어수선한 상태다.

 “이 감독이(이정훈 감독은 이강돈 감독의 고교 2년 후배다.) 팀을 잘 이끌었어요. 각종 전국야구대회에서 우승을 휩쓸기도 하며 명성도 높여 놨죠. 초특급 유망주 윤형배 선수도 있었고요. 부담감이 크지만 저만의 스타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나가야죠.”

 이정훈 전 감독은 선수들에게 무서운 호랑이 감독으로 통했다고 한다. 반면 이 감독은 선수들에게 언제나 자상하게 다가가려고 애쓰고 있다. 또한 이 감독은 아이들에게 항상 기본에 충실 하라고 조언한다. 아직 프로가 아닌 아마추어기 때문에 기본을 바탕으로 실력을 키워야 한다는 의미다.

 “당장 눈앞에 성적보다는 기본에 충실했으면 좋겠습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항상 ‘첫째도 기본 둘째도 기본’이라는 얘기를 해줍니다. 고교 야구팀은 프로처럼 하루의 결과를 갖고 순위를 매기지 않아요. 고교 야구부는 꿈을 키우는 곳입니다.”

이글스에서의 추억 … 영원한 2번 타자

사실 충청도 프로야구팬이라면 빙그레부터 한화까지 이글스의 다이너마이트 타선의 향수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다. 또한 이 중심에는 언제나 이 감독이 있었다. 이 감독은 유승안·이정훈·장종훈·강정길 등 당대 강타자들과 함께 빙그레 이글스를 최고 반열의 팀으로 이끌었다.

 “화끈한 팀이었죠. 경기 초반에 많은 실점을 하더라도 후반에 7점, 10점을 더 얻어내서 역전하는 경우도 많았으니까요. 투수력은 조금 떨어졌지만 그만큼 시원시원한 야구를 했던 것 같아요.”

 그는 통산 87홈런을 기록했다. 특히 2번 타자임에도 불구하고 한 시즌에 16홈런을 기록한 적도 있다. 2번 타자는 특성상 1번 타자의 진루를 우선으로 하기에 장타력 있는 선수보다는 팀 배팅을 할 줄 아는 선수를 배치하기 마련이다. 이 감독은 장타력도 갖추고 팀 배팅까지 생각하는 다재 다능한 선수였던 것. 2번 타자 한 시즌 16홈런은 아직도 깨지지 않는 기록이라고 한다.

 “그 시절 빙그레 이글스 김영덕 감독님이 저를 2번에 배치하셨어요. 타율도 높았고 안타나 홈런도 많았기 때문에 초반 타선부터 확실히 기선제압을 하자는 의미였던 것 같아요. 2번 타자의 역할을 훌륭히 해내자 다른 팀들도 강타자를 2번에 배치하기도 하더군요.(웃음)”

 이 감독은 데뷔 첫해 104경기서 타율 2할9푼7리 103안타 10홈런 10도루를 기록하며 성공적인 데뷔 시즌을 치뤘다. 2년 차인 1987년에는 적응기를 거쳤다. 단내 나는 훈련을 했던 1987년 겨울을 지나, 1988년 타율 3할1푼 3리 118안타를 시작으로 본격적으로 폭발했다. 1989년과 1990년 2년 연속 리그 최다안타를 기록하며 리그 최고의 2번 타자로 우뚝 섰다. 해태 타이거즈의 강타자인 이순철(현 기아)코치도 “이강돈은 최고의 타자. 나와는 언제나 라이벌.”이란 얘기를 입버릇처럼 했다고 한다. 하지만 언제나 최고의 명성을 떨치던 이 감독에게 선수시절 우승을 한 차례도 못한 것은 못내 아쉬움으로 남는다.

 “1988년 이었죠. 정규리그 1위를 확정하고 3위로 포스트 시즌을 거쳐 올라온 롯데 자이언츠와 한국시리즈를 벌였어요. 선수와 감독뿐 아니라 전문가들도 당연히 우승할 것이라고 예상했는데 1승3패로 처참히 깨지고 말았어요. 99년 2군 타격코치를 맡았는데 그때 첫 우승을 하더라고요. 1988년 한국 시리즈만 생각하면 지금도 잠이 오질 않네요.”

이강돈 천안북일고 야구감독

자상한 아버지 같은 감독 되고파

현재 북일고는 새 학기에 앞서 막바지 동계훈련에 한창이다. 지난달에는 일본으로 전지 훈련을 갔다 올 만큼 학교에서의 지원도 좋다. 기자가 학교를 찾았던 이날에는 타지역 고교 야구부와의 연습게임이 한창이었다. 덕 아웃에서 선수들을 지도하던 이 감독은 경기 내내 선수들을 큰 소리로 다그치기 보단 진심 어린 조언을 해주는 모습이 눈에 띄었다.

 “제가 예전에 야구를 시작할 때 선배들의 구타 때문에 바로 그만둔 적이 있었습니다. 팀 분위기가 살벌하고 침체돼 있으면 의지까지 사라진다고 생각해요.”

 이 감독은 야구를 조금 늦게 시작했다. 중학교 1학년 때부터다. 원래 초등학교시절 수영선수였다고 한다. 중학교에 진학한 뒤 우연한 기회에 어깨가 좋아 감독으로부터 야구부 가입을 권유 받았다.

 “1학년 어느 날 체육 시간에 선생님이 고무 수류탄 던지기를 시켰어요. 수영을 했었으니 어깨는 좋았죠. 던지고 나니까 내가 반에서 제일 멀리 던졌더군요. 더군다나 왼손이었으니까 체육 선생님이 나를 콕 집어서 방과 후 남아보라고 했어요. 이후 야구 감독님을 처음 만나고 야구를 시작하게 됐죠. 사실 야구가 무엇인지도 몰랐는데 배우니까 정말 재미있었어요. 근데 선배들이 하도 때리는 통에 견딜 수가 없었죠. 이유 없는 단체 기합이나 구타들이 계속되니까 이러다 죽겠다 싶었어요.”

 그렇게 야구를 잠시 쉬던 이 감독을 설득한 건 그 당시의 야구부 감독이었다. 자초지정을 듣고 “내가 못 때리게 하겠다. 재미있는 야구부를 만들겠다.”라는 약속을 받아내고 다시 야구를 시작한 것. 이 감독이 현재 북일고 야구부원들을 자상하게 대하면서 팀 분위기를 밝게 만들기 위해 노력하는 이유다.

 “앞으로 선수와 팬들로부터 ‘북일고 야구는 재미있다’라는 소리를 많이 듣고 싶어요. 고교 팀 감독은 저에게 있어 또 한번의 도전입니다. 천안아산 팬들에게 사랑 받는 야구팀이 될 수 있도록 노력하겠습니다.”

글=조영민 기자 , 사진=조영회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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