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로지] 가요대전 3관왕 god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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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용필씨가 몇 해째 잇따라 '가수왕'을 차지하던 무렵의 일이다.

방송사에 근무하던 내게 하필 12월 31일 숙직이 걸렸다. 인터넷도 없던 시절이라 시청자의 반응을 곧바로 육성으로 전해 듣던 시절이었다. 제야의 종소리가 끝나고 이윽고 올해의 가수왕을 사회자가 호명하자 곧바로 전화통에 불이 났다. 문의나 제보 전화가 아니라 모조리 분노에 찬 항의전화였다.

왜 또 그 사람이냐. 미리 짠 게 아니냐. 올해는 누구 노래가 훨씬 좋았는데 너희 방송사는 왜 그 사람에게만 가수왕을 주느냐 등. 비방과 욕설, 심지어 울부짖는 소녀도 있었다. 잠 한숨 못 자면서 내가 발견한 건 이 불꽃 같은 정열을 민주화 운동에 점화시킨다면 우리나라가 참 발전할텐데 하는 안타까움이었다.

방송사의 인터넷 게시판마다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가 왜 대상을 못 받았는지에 대한 원망 어린 방성대곡이 빼곡이 꽂혀 있다. 청소년기는 영웅이 필요한 때라고 한다. 영웅이 없는 자리에 TV가 만든 우상이 대입되는 시기도 바로 그 즈음이다. 내게도 십대 초반 '커피 한잔'을 부른 펄시스터즈가 가수왕 되는 걸 멍하니 쳐다보며 감격해 하던 시절이 있었다.

YWCA에서 만난 어떤 중년 부인이 "god의 '길'이라는 노래 정말 좋던데요"라고 말해순간 놀랐던 기억이 난다. 2001년 방송3사의 연말가요제전에서 대상을 휩쓴 팀이 바로 그 god다. 50대 여성이 듣기에도 좋을 정도로 선율이 아름답고 메시지 또한 한번쯤 삶에 대해 돌아보게 했다면 그걸로 일정 지분의 작품성과 대중성을 담보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물론 그들의 음악성에 시비를 거는 사람도 없진 않다. 포장술이니 마케팅 전략이니 하는 소리도 들린다.

대중음악 시장이 대체로 그렇지만 그들의 탄생 역시 철저한 시장전략에 의해서였다. 일종의 기획상품이었던 셈이다. 그들은 치열한 가요전쟁터에 나름대로 총 한 자루씩 들고 나타난 전투요원들이다. 그들은 신비감보다는 친근감을 전술무기로 사용했다.

god의 데뷔곡 '어머님께'는 가난이 싫었던 어느 소년의 가슴 아픈 추억담이 소재다. 아들에게 자장면을 사주며 '어머님은 자장면이 싫다고 하셨어'라고 반복하는 부분이 여운을 준다. 노래 속의 서정적 자아는 이제 하늘나라로 가신 어머님의 큰사랑에 목이 메인다. 허름한 감상주의라고 낮추볼 수도 있겠지만 가족과 세상(빈부의 격차) 에 대해 돌아보게 하는 내용임에는 분명하다.

2000년 god가 대상을 받을 때 "여러분은 지금 god가 대상을 받는 현실을 보고 계십니다"라고 얼떨결에(□) 말했던 김동건 아나운서는 2001년 2연패한 god에 대해 그런 평석을 추가하지 않았다. '가요무대'의 오랜 진행자이기도 한 그는 이제 가요와 무대의 '현실'을 인정하는 눈치다.

지역감정도 참 걱정이지만 세대감정도 큰 문제다. 세대간에 너무 높은 벽을 쌓아가고 있다. 방송사의 십대(10大) 가수조차 30세 이상과 그 이하의 국민이 따로 뽑고 있다.

이제 어른들이 할 일은 분명하다. 그게 무슨 노래냐고 되묻지 말고 과연 십대(10代) 들이 어떤 노래에 마음을 빼앗기고 있는지 찬찬히 들여다보자. 오래 전 자신이 지나쳐 버린 젊음의 역사(驛舍) 주변에서 지금 막 객창감에 들떠있는 아이들이 좀 떠든다고 야단치지 말 일이다.

낡은 서랍 속의 연애편지를 다시 발견한 느낌을 아는가. 흘낏 넘겨보니 그때가 참 아름답지 않았는가 말이다.

주철환 이화여대 언론홍보영상학부 교수 〈chjoo@ewha.ac.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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