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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노도 못 받은 기립박수를 받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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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8면

“(신체의) 한계는 (장애가 아니라) 창의성을 발휘하게 한 은총이었습니다.”

 필 한센(34)이 발표를 마치자 26일(현지시간) TED 본 행사가 열리는 롱비치 행위예술센터에 모인 관객들이 모두 일어났다. 앞서 연단에 오른 제니퍼 그랜홈 전 미시간 주지사나 “미국 경제의 성장은 끝났다”고 선언해 화제가 된 로버트 고든 노스웨스턴대 교수, 심지어 인기 록그룹 U2의 리드 싱어인 보노의 발표가 끝나도 꼼짝 않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멀티미디어 아티스트라고 자처하는 낯선 남자에게 기립 박수를 보냈다. 미국인인 한센은 올해 TED가 처음으로 시도한 글로벌 오디션을 통해 선발됐다. TED는 지난해 14개국에서 평범하지만 ‘퍼뜨릴 만한 가치가 있는 아이디어(Ideas Worth Spreading)’를 가진 ‘알려지지 않은 이들(The Undiscovered)’ 34명을 선발해 올해 발표자로 세웠다.

 한센은 자신이 예술가가 되기까지의 과정을 이야기했다. 펜을 꽉 쥐고 점을 찍어 형태를 그리는 점묘화법에 수년간 지나치게 몰입한 탓에 손가락 신경이 손상됐다. 손이 심하게 떨렸다. 예술을 하고 싶어 미대에 들어갔지만 선 하나 똑바로 그리지 못했다.

 “세상이 무너지는 것 같았습니다. 학교도 그만두고 아예 예술은 쳐다보지도 않기로 했습니다.”

  그렇게 되는대로 살다가 의사의 한마디가 한센의 인생을 바꿨단다. “손 떨림을 은총이라고 생각해 봐.”

 이후 그는 다시 예술을 시작했다. 쉼 없이 흔들리는 손 때문에 다른 방법으로 접근했다. 떨리는 선을 모아 초상화를 그리고, 주먹에 물감을 묻혀 이소룡이 주먹을 뻗는 장면을 묘사했다. 다른 방향에서 예술을 바라보는 그의 시도는 ‘굿바이 아트’라는 그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만들어 냈다. 성냥개비로 지미 헨드릭스(유명 기타리스트) 형상을 만든 뒤 불태우는, 형체가 사라지는 순간을 녹화하는 방식이었다.

 이날 케냐 나이로비에서 온 열세 살 리차드 투레레도 TED의 글로벌 오디션을 통해 선발된 강연자다. 투레레는 양과 소 떼를 습격하는 사자를 막을 수 있는 방법을 고민하다 빛을 받으면 사자가 피한다는 점에 착안해 ‘사자 쫓는 광선(lion lights)’을 만들었다. 투레레의 발명품을 보고 이웃들도 모두 비슷한 걸 만들어 달라고 부탁했고, 그의 이야기가 전국적으로 퍼지면서 투레레는 케냐 최고 대학에서 장학금까지 받았다. 평생 비행기를 눈으로 볼 수 있을까 싶었던 아프리카 초원의 소년이 비행기를 만들고 그걸 조정하겠다는 꿈까지 꾸게 된 것이다.

고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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