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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기 4299년

중앙일보

입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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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오늘은 단군시조의 개국을 기념하는 개천절이다. 더 말할 것도 없이 오늘은 우리의 개국신화에 관련된 날이다. 전설에 의하면 우리의 개국시조인 단군께서는 거금 4299년 전인 오늘, 즉 서기 기원전2333년의 상달 초하룻날(음력10월3일)에 처음으로 도읍을 주검성에 점하고, 국호를 조선이라고 선포한 것으로 전해진다. 개천절은 이날을 기념하기 위하여 1949년, 초대 대한민국국회에 의하여 제1착으로 제정한 국경일임도 우리가 다 아는 바와 같다.
지금 우리로서는 아득한 옛날의 개국신학에 담겨진 설화의 진부를 분간할 도리가 없으며, 또 현대에 사는 우리 국민이 하필이면 꼭 이와 같은 신화 속의 건국일을 굳이 국경일로서 경축해야할 필요가 있을 것들에 관해서는 이론이 있을 줄 안다. 그러나 이미 법률로써 제정된 국경일인 개천절의 배경을 이루고있는 단군신화에 관하여 우리로서 생각할 수 있고 또 마땅히 생각해야 할 일은, 그것이 다른 나라의 개국신화와 마찬가지로 한민족의 고유한 민족적 이상을 상형화 시킨 상징의 일부라는 사실이다.
단군신화에는 유구한 역사를 통하여 우리 겨레가 공통의 시조를 갖는 단일민족으로서의 자각과 긍지가 선명하게 그려져 있다. 이러한 신화가 구전이건 기록에 의한 것이건 간에, 수천년동안 연면히 전승돼 내려왔다는 사실은, 그 자체가 매우 상징적인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보아야한다. 학자들은 신화가 언어·종교·예술·과학·철학 등과 더불어 인간의 가장 본질적인 능력인 상징기능의 소산임을 밝혀주고 있다. 따라서 우리 민족이 이와 같은 개국신화를 가지고 있다는 사실은, 곧 다시 말해서 우리가 지금은 여러 가지 사정으로 잃어버리고 있으나, 정작 우리 겨레에게 있어서는 고내로 한 지도자의 덕화아래 여러 부족이 그야말로 순박·온화하게 하나로 뭉쳐사는 것이 얼마나 큰 민족적 이상이었던가를 능히 짐작케 해주는 것이라 하겠다.
오늘 개천절을 맞이하여, 이날을 민족의 이상 또는 한 겨레로서의 공동운명체의식 같은 것을 다시 한번 자각하는 계기로 삼고, 혹은 국토분단의 뼈저린 비극 속에서 다시 한번 통일에의 의지를 굳힐 수 있다면 얼마나 슬기로운 일이겠는가. 개천절에 정작 생각해야 할 것은 , 우리가 흔히 목도하듯 허황하게 반만년역사의 자랑을 늘어놓는 복고주의자들에게 값싼 동정을 하는 것을 오히려 경계해야 한다는 것이요, 그 신화적 상징가운데서 도리어 건설적인 미래를 위한 행동원리를 찾아야한다는 것이다. 신화는, 맛있는 「파이」가 결코 천상이나 미화된 역사속에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니라, 도리어 바로 오늘, 현대의 식탁에 놓여져야 한다는 것을 가르쳐 준다는데 그 참다운 의미가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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