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요된 에로스' 탈출 진실한 性의 의미 모색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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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애(性愛) 소설이 포르노와 결별하려면 끊임없이 '행복의 조건으로서의 성'을 탐구하고 있음을 증명해야 한다. 성이 행복에 필수불가결한 요소인가를 포함해 도대체 어떤 성이 천국을 향해 열려있는 지름길인가를 물어야 한다는 얘기다.

와타나베 준이치(渡邊淳一.65) 의 신작 장편소설 『샤토 루즈』는 그런 의미에서 괜찮은 성애소설이라 할 수 있다.

일본의 유수 문예지인 『문예춘추』에 연재될 때부터 대담한 성애 묘사와 상황 설정으로 화제를 모았던 이 소설은 33세의 엘리트 의사인 '나'와 여섯살 아래의 부인 '쓰키코'를 주인공으로 현대 사회의 성의 과잉 속에 넘쳐나는 성불구를 탐구하고 있다.

결말 직전까지의 줄거리는 이렇다. 부유한 집안에서 태어난 아내 쓰키코와 자수성가형인 나는 결혼 후 성생활을 제대로 할 수 없다.

주요한 이유는 아내의 거부 때문. '나'는 유럽에서 알게된 친구를 통해 프랑스의 어느 고성(古城) 에서 프랑스 특유의 방중술로 여성의 불감증을 치료한다는 정보를 얻게 된다.

그곳이 샤토 루즈(붉은 성) 다. '나'는 샤토 루즈측과 짜고 납치사건을 빙자해 아내를 그곳에 집어 넣는다. 그 뒤 75일간의 '드레사주(조련) '를 거쳐 아내는 '나'의 품에 돌아온다.

여기까지 보면 소설은 통속적이기 이를 데 없다. 그러나 마치 임상에서 환자를 돌보던 의사의 진단서처럼 드라이한 서술과 정확한 심리 묘사로 일관하는 문체는 위험 수위를 낮춰준다.

예상과 달리 조련받은 아내는 여전히 주인공을 거부하며, 심지어 다시 샤토 루즈로 떠난다는 후반부의 극적 반전에 이르면 앞서 보았던 '질펀한' 내용들의 의미가 새롭게 다가옴을 알 수 있다.

작가는 성의 과잉(샤토 루즈) 과 결핍(가정) 등 여러가지 대립항을 통해 성의 의미를 규정하고 그것을 추구하는 데 있어 여성적 세계가 더 우월함을 보여주고 있다.

작가는 "45년 전까지 일본을 비롯해 금욕주의를 강요당한 나라가 파시즘으로 빠졌고…, 에로스를 제대로 추구하는 사람이야 말로 진정한 평화주의자"라고 성을 규정한다. 그런데 주인공 '나'의 행위는 왜 패배로 귀착된 것일까.

그것은 일련의 조련 과정을 꾸미고 엿보고 분노했던 주인공의 에로스 추구가 가짜였기 때문이다. 작가는 에로스란 직관과 감각의 세계이지 분석과 이성의 영역이 아님을 발언하고 있다.

아내 쓰키코가 조련을 통해 배운 것은 성적 쾌락에 몸을 여는 기술 그 자체가 아니라는 뜻이기도 하다. 쓰키코는 성적 수련의 방법을 통해 타인의 시선과 욕망(내 딸은 멋져와 같은) 에 맞춰 사는 삶에서 탈출한 것이다.

일본 열도에 신드롬을 불러일으켰던 작가의 전작 『실락원』이 불륜을 통해 사랑의 의미를 탐구했다면 이번 소설은 관계 지향과 배려라는 여성적 세계와 목적과 속도지향의 남성적 세계를 성을 통해 대비해 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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