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과 세상] 문예지 원고료 올려야 한국문학이 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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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재삼 시인이 1997년 타계하고 얼마 지나지 않아 그의 시전집이 곧 나올 것이라는 소식을 접했습니다.

전집을 기획하고 있는 문학평론가에게 즉시 전화를 걸었습니다. "사실이냐"고. "그렇다"는 말에 "박재삼 시인의 시를 진정 아낀다면 전집 출간은 좀 보류하는 것이 어떻겠느냐"고 했고 그 평론가도 선뜩 받아들였습니다.

박시인은 죽음을 앞두고 이렇게 한탄했습니다. "40년간 죽자사자 쓴 내 시 전부의 값이 화가의 그림 한 점 값만도 못하다니!" 펴낸 시집만 20여권,산문집 10여권인데 이 많은 책에 실린 시와 산문의 원고료와 인세를 다 합쳐보았자 살아 있는 유명화가의 그림 한 폭 값에도 못미친다는 것입니다.

그래 박시인은 원고 청탁이 들어올 때마다 부지런히 글을 써서 비슷비슷한 내용의 시와 산문이 많습니다. 그런 시들이 모두 전집에 실린다면 박시인의 좋은 시들에 오히려 마이너스가 될 것이기에 그 평론가도 순순히 응했던 것입니다.

한 해가 저물다보니 안쓰러운 사람들이 더욱 눈에 띠고 마음 또한 그렇습니다. 양푼 가득한 칼국수를 나눠 먹다보니 배고픈 시절의 형제들 불러모와 도란도란 함께 실컷 먹고 싶습니다. 주위에 배고픈 문인들이 많습니다.

글을 써서 그 글값으로 먹고살아야 하는데 원고료는 사반세기 내내 한푼도 오르지 않았습니다. 맥주 마시고 양주 마시는 시절에 25년전의 허름한 목로 주점으로 돌아가 막걸리나 찬 소주에 북어 새끼나 뜯게 하는게 우리의 원고료 수준입니다.

얼마전 문화부 관계자들이 문학담당 기자들을 불러 "어떻게 하면 문인들을 가장 잘 도와줄 수 있을까"를 물었습니다. 서슴없이 "문예지에 원고료를 지원해 주는 것이 가장 좋은 방법"이라고 했습니다.

74년부터 문예진흥원을 통해 문예지에 지원해주던 원고료가 90년부터 중단됐습니다. 대신 문인들의 작품집을 사주거나 창작지원금을 문인에게 직접 주고 있습니다.

작품은 계속 쓰고 싶으나 경제난에 허덕이는 해당 문인들에게는 적잖은 도음이 되겠으나 한국문학 발전과 문인들 전체적으로는 별 도움이 될게 없습니다.

문예지에 원고료를 지원해줘 원고료를 끌어올리는 것이 문인들 전체에 훨씬 큰 도움이 될 것입니다. 문인들은 문예지에 작품만 발표하는 것이 아닙니다.

더 많은 글들을 각종 신문이나 잡지, 사보 등에 싣고 있습니다. 이들 지면은 문예지의 두배 정도, 2백자 원고지 장당 1만원 정도의 원고료를 주고 있습니다.

문예지의 원고료가 제자리 걸음을 하고 있으니 이들 지면이 글 값을 설사 올리고 싶더라도 올릴 명분이 없는 것입니다.

90년도부터 원고료 지원을 그만둔 것은 일부 문예지들이 그 지원금을 방만하게 썼기 때문입니다. 무엇보다 저항적.진보적 문예지에는 지원금이 한 푼도 돌아가지 않았고 친정부적.보수적 문예지에만 돌아갔기에 민주화 추세에 발맞춰 폐지된 것입니다.

이제 지원금으로 문학이 아니라 자기편만 도우려는 문예지는 없을 정도로 문단이 개방화.투명화됐고 친정부.반정부 운운 하는 오해도 없을 것이니 대표적 문예지를 엄선해 다시 지원해주시길 바랍니다. 원고료 수준을 두배로 끌어올리는 것이 문인 모두와 한국문학을 진정으로 돕는 길일 것입니다.

이경철 문화부 부장대우 〈bacchus@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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