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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OJ 총재에 엔저 돌격대 구로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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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일본의 2% 인플레이션과 엔화 약세를 밀어붙일 일본은행(BOJ) 새 총재가 내정됐다.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중앙은행인 BOJ의 신임 총재에 ‘아베노믹스’의 신봉자인 구로다 하루히코(68·사진) 현 아시아개발은행(ADB) 총재를 기용하기로 했다고 일 언론들이 25일 일제히 보도했다.

 정부 대변인인 스가 요시히데(菅義偉) 관방장관도 이날 “아베 정권이 내건 대담한 금융정책이 이미 시장에서 높은 평가를 얻고 있는 만큼 이를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체제가 필요하 다”며 “이번 주중 BOJ 총재와 2명의 부총재 인사안을 국회에 제출할 것”이라고 말했다.

 부총재에는 나카소 히로시(59) BOJ 이사와 이와타 기쿠오(岩田規久男·70) 가쿠슈인(學習院) 대학 교수가 내정됐다. 이와타 교수는 “더 과감하게 돈을 풀어 인플레를 2%까지 끌어올려야만 고질적인 디플레를 해결할 수 있다”는 주장을 펴 왔다. 아베 총리로 하여금 지난해 12월 중의원 총선거 전 “일본은행법을 개정해서라도 금융완화를 시행하겠다”는 강경발언을 유도한 인물로 거론됐다.

 BOJ 인사안은 중의원과 참의원에서 과반 동의가 필요하다. 여소야대인 참의원의 향배가 관건이다. 하지만 제1야당인 민주당은 “반대할 특별한 명분이 없다”며 수용할 뜻을 밝히고 있다. 구로다는 국회 동의를 얻으면 다음 달 20일께 취임한다.

 구로다는 재무성 출신으로 재무관 시절부터 “BOJ의 금융정책이 잘못됐다”고 비판해 왔다. 또 “BOJ가 장기국채와 자산담보부증권(ABS), 주식 매입 등 금융완화를 실행할 수 있는 수단은 산처럼 쌓여 있다”고 했다. 니혼게이자이(日本經濟)신문은 “BOJ가 가장 경계하던 인물이 새 총재가 됐다”고 논평했다. BOJ 독립시대가 끝났다는 얘기다.

 아베 총리가 구로다를 선택한 배경으론 ‘통화외교’도 거론된다. 달러당 100엔 시대를 열기 위해선 구로다가 갖춘 국제금융시장의 네트워크와 소통 능력이 필요했다는 시각이다. 니혼게이자이 등은 “서방 국가와 한국·중국 등에서 ‘엔저 공격’에 불만이 속출하는 것을 감안해 이를 완화할 인맥과 영어구사 능력을 중시했다”고 분석했다. 구로다는 아베노믹스에 충실한 동시에 ‘국제금융 마피아’의 일원이 돼야 하는 숙제를 안은 셈이다. 그는 도쿄대 법학부를 졸업한 뒤 영국 옥스퍼드대에서 경제학 석사 학위를 받았다.

 국제금융 전문가인 도시마 이쓰오(豊島逸夫) 전 WGC 일본대표는 “아베 총리는 구로다가 유창한 영어로 주요국 통화 당국자 및 외국 언론을 설득하며 달러당 100엔을 실현할 적임자로 본 것 같다”고 진단했다. 그는 부총재 인선에 대해선 “‘안티 BOJ’의 대표 격인 이와타 교수와 BOJ 실무에 정통한 나카소 현 이사를 나란히 앉혀 외적 균형을 갖추게 했다”고 평가했다.

 아베의 이번 인선에 시장은 민감하게 반응했다. 25일 닛케이주가지수는 2.4% 이상 급등하며 4년 반 만의 최고치를 기록했다. 엔화 값도 이날 한때 2010년 5월 이후 최저인 달러당 94.77엔까지 떨어졌다

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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