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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기고] 고건의 공인 50년 (11) 행정 각부를 통할하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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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2면

2003년 3월 25일 노무현 대통령(오른쪽)과 고건 국무총리가 청와대에서 만났다. 고 총리가 노 대통령에게 업무보고 자료를 건네고 있다. [중앙포토]

오래된 집을 허물려면 먼저 이사 갈 집부터 구하는 게 순리다. 머물 새집도 구해놓지 않고 낡은 옛집을 부쉈다가는 풍찬노숙(風餐露宿·바람 맞으며 먹고 이슬 맞으며 자는 것) 신세가 될 뿐이다. 출범 100일을 맞은 새 정부 상황이 꼭 그랬다.

노무현 정부는 탈(脫)권위주의를 내세웠다. 권위주의 정권 때 만든 시스템은 사라졌지만 새 시스템은 아직 자리 잡지 못한 상태였다. 수십 가지 민원과 갈등이 터져나왔고 이를 해결할 공식 창구가 급했다.

 2003년 5월 중순의 일이다. 노 대통령과 주례 오찬이 있었다. 청와대 문희상 비서실장, 이정우 정책실장과 이영탁 국무조정실장이 함께 자리했다.

 노 대통령이 먼저 말을 꺼냈다.

 “사회적 갈등을 국가적 차원에서 해결하는 권위 있는 시스템을 구상하고 있어요. 이정우 실장이 지금 그 일을 맡아서 연구하고 있습니다.”

 시간이 없었다. 전교조 연가투쟁(교사들이 일제히 연차휴가를 내고 시위)에 화물연대 운송 거부 사태까지…. 연구가 마무리될 때까지 기다리기엔 상황이 급박했다.

 “현안 해결이 급합니다. 우선 국무총리가 관계부처 장관과 청와대 관계 수석비서관 등을 모아서 정책을 조율하고 일관된 원칙을 가지고 대응하겠습니다.”

 내 얘기를 들은 노 대통령은 잠깐 생각하는 듯하더니 답했다.

 “그렇게 하시죠.”

 이 얘기를 듣고 있던 문희상 실장이 나에게 말했다.

 “저도 끼워주십시오.”

 “아. 환영합니다.”

 오찬이 끝날 무렵 나는 못을 박기 위해 한마디 덧붙였다.

 “아까 말씀 드린 정책조정회의는 주 2회 열도록 하겠습니다.”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는 그렇게 탄생했다. 이전에 없던 새로운 회의체였다. 지금 국가정책조정회의의 시초다. 첫 회의는 5월 21일 서울 삼청동 총리공관에서 현안정책조정회의란 이름으로 열렸다. 비공개였다. 나와 강금실 법무부 장관, 김두관 행정자치부 장관, 청와대 문희상 비서실장, 이영탁 국무조정실장이 참여했다. 첫 안건은 전국공무원노조 문제였다. ‘원칙대로 대응한다’는 결론을 냈다.

 일주일이 지났다. 5월 27일 청와대 세종실. 국무회의를 마치고 장관들과 노 대통령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회의실을 나와서 노 대통령과 함께 걸으며 조용히 말했다.

 “차 한잔 주십시오.”

 “…. 그러시죠.”

 국무회의와 주례 오찬, 대통령이 주재하는 관계 장관회의에 국정과제회의까지. 노 대통령과는 이틀에 한 번꼴로 만났다. 따로 할 말이 있으면 나는 그에게 ‘차 한잔 달라’고 했다. 그도 나에게 할 말이 있을 때 ‘차 한잔 하자’고 했다. 노 대통령과 나만이 통하는 ‘긴히 논의해야 할 일이 있다’는 신호였다.

 국무회의는 청와대 오른쪽에 있는 큰 회의실인 세종실에서 열린다. 거기서 나오면 복도 왼쪽에 작은 별실이 있다. 우리는 ‘차 한잔’이 필요할 때마다 그 방으로 갔다. 마주 앉은 우리 앞에 비서진이 녹차를 내려놨다. 노 대통령이 입을 열었다.

 “그래, 어떤 일 때문이십니까?”

 “NEIS(나이스·교육행정정보시스템) 문제가 심각합니다. 사태가 이상하게 표류하고 있습니다.”

 상황의 심각성을 조목조목 얘기했다. 심각한 얼굴로 내 말을 듣고 있던 노 대통령이 답했다.

 “이 문제는 교육인적자원부에만 맡겨 놓기에는 어려운 상황이네요. 총리가 맡아서 수습해 주셔야겠습니다.”

 노 대통령의 재가(裁可)가 떨어졌다. 현안정책조정회의란 이름을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로 바꾸고 6월 3일 총리 취임 100일 기자회견에서 이 회의체에 대해 공식 발표했다. 다음날 열린 국가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NEIS 문제를 안건으로 올렸다. 여기서 이 문제를 직접 챙기겠다는 뜻을 공식화했다.

 6월 18일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에서 교육부총리 소관이었던 교육행정정보화위원회를 국무총리 직속 자문기구로 격상하기로 결정했다. 이 위원회는 NEIS 문제와 관련한 협의기구 역할을 했다. 이세중 전 대한변호사협회 회장에게 직접 전화를 걸어 “위원장을 맡아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교육·인권·정보·시민·언론, 학부모에 종교계까지 각 분야를 대표하는 20명 위원을 위촉했다. 사회적 합의를 위한 사실상의 신설이었다.

 전교조 연가투쟁, 학생부 CD 제작·배포 논란 등 진통은 있었지만 NEIS 사태는 해결의 기미를 보였다. 교육행정정보화위원회에서 수차례 회의를 하며 조금씩 합의점을 찾기 시작했다. 그리고 12월 15일 9차 교육행정정보화위원회에서 NEIS를 도입하되 27개 영역 중 교무·학사, 보건, 전학·입학 등 3개 영역을 전국 단위가 아닌 시·도 단위로 관리한다는 합의안을 내놨다. 교사, 학부모, 교원단체 간의 의견을 수렴해 사회적 합의에 이를 수 있었다.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는 2003년 5월부터 1년 동안 67번 열렸다. 경부고속철 천성산 구간과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 터널 구간 논란과 화물연대 집단 운송 거부 사태, 주5일제 등 333개 안건이 회의를 거쳤다. 문희상 실장은 한 번도 빠지지 않고 나와 회의에 힘을 실어줬다. 문재인 민정수석도 거의 모든 회의에 참여했고, 이광재 국정상황실장도 배석했다.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가 가지는 의미는 매우 컸다. ‘행정 각부를 통할한다’는 헌법에 정한 총리의 권한을 실질적으로 행사할 수 있도록 뒷받침했다. 지금의 국가정책조정회의가 그 역할을 하고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정리=조현숙 기자

◆ 국정현안정책조정회의 거친 주요 안건

▶사회적 쟁점 조정

주5일 근무제, 외국인고용허가제, 군 가산점

▶공공 갈등 조정

NEIS 사태, 서울외곽순환도로 사패산 터널 구간 건설

▶범정부 대응 시스템 마련

사스(SARS) 방역

▶탄핵정국 수습

◆ 이야기 속 사건

NEIS (나이스)

교육행정정보시스템(National Education Information System)의 약자. 학교 생활 정보를 모아 온라인으로 통합 관리하는 제도. 인터넷을 통해 학생, 학부모와 교사, 대학이 함께 이용하도록 했다. 교육부가 2003년 4월 제도를 실시하려 했지만 정부와 전국 시·도교육청, 전교조, 한국교총, 학부모 단체 등 간에 찬반이 엇갈리면서 시행 시기가 늦춰졌다. 전교조는 개인정보 유출, 학생 인권침해라며 NEIS 도입을 반대 했다. 그해 5월 국가인권위원회 역시 “사생활 침해 우려가 있다”며 보완을 권고했다. 1년간 논의 과정을 거쳐 2005년 3월부터 1년간 시범 운영에 들어갔고 2006년 3월 본격 시행됐다. 지금은 1만여 개 초·중·고와 특수학교, 178개 교육지원청, 16개 시·도교육청 등에서 활용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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