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말 바루기] 인이 박여, 굳은살이 박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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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애연가들은 “이제는 인이 박여 담배를 끊기가 쉽지 않다”고 말한다. 미국의 한 유명 여배우는 “커피를 마시는 것처럼 인이 배겨서 성형수술을 도저히 끊을 수 없었다”고 토로했다. 운동 중독에 빠진 사람도 많다. 이들은 “하루라도 조깅이나 수영 등의 운동을 하지 않으면 인이 박혀서인지 못 견디겠다”고 호소한다.

 자꾸 반복해 몸에 깊이 배는 것을 가리켜 ‘인이 박여’ ‘인이 배겨서’ ‘인이 박혀서인지’ 등 모두 달리 표현했다. 어떻게 사용하는 게 맞을까? ‘인이 배겨서’ ‘인이 박혀서인지’라고 해서는 안 된다. 버릇·생각·태도 따위가 깊이 배다는 의미를 나타내려면 동사 ‘박이다’를 써야 한다. ‘인’은 여러 번 되풀이해 몸에 깊이 밴 버릇을 이르는 말이므로 ‘인이 박여서’ ‘인이 박여서인지’로 고쳐야 맞다.

 ‘박이다’에는 손바닥·발바닥 등에 잦은 마찰로 인해 두껍고 단단한 살이 생기다는 뜻도 있다. “맞잡은 아버지의 손은 굳은살이 배겨 나무껍질처럼 단단했다” “그의 발바닥은 군데군데 물집이 잡혔고 뒤꿈치엔 굳은살이 박혔다”와 같이 사용하는 것은 바르지 않다. ‘굳은살이 박여’ ‘굳은살이 박였다’로 바루어야 한다.

 ‘배기다’는 바닥에 닿는 몸의 부분에 단단한 것이 받치는 힘을 느끼게 되다는 뜻으로 “딱딱한 의자에 오래 앉아 있었더니 엉덩이가 배겨 왔다”처럼 쓰인다.

 ‘박히다’는 “벽에 박힌 못을 뽑아라” “진주가 박힌 반지를 잃어버렸다” “그 장면들이 뇌리에 박혀 사라지지 않는다”와 같이 힘이 가해져 두들겨 꽂히거나 끼워 넣어지거나 인상 깊이 새겨지는 것을 말한다. “못이 박힌 손”이라고 하면 고정할 때 쓰는 뾰족한 못이 꽂혔다는 뜻이 되지만 “못이 박인 손”이라고 하면 굳은살이 생긴 손이란 의미가 된다.

 ‘판’이나 ‘틀’이란 말이 앞에 올 때도 ‘박이다’와 ‘박히다’ 가운데 어떤 동사를 써야 할지 헷갈린다는 이가 많다. 판이나 틀에 어떤 물질을 넣어 일정한 모양으로 찍어 낸다고 생각하면 쉽다. “판에 박힌 인사는 그만둬” “틀에 박힌 생활이 지겹다”처럼 사용해야 바르다.

이은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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