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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퇴 크레바스’ 어떻게 대비하고 있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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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10면

마이클 리드
피델리티자산운용 대표

요즘 국민연금 가입자의 마음은 다소 불편하다. 국민연금을 바라보는 국민의 비판 여론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기금 고갈을 늦추기 위해 연금의 수령 개시 연령을 만 65세까지 상향 조정하겠다는 발표가 있었기 때문이다.

 기존 만 60세였던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은 올해부터 단계적으로 늦춰진다. 1969년 이후 출생자는 만 65세가 되어야 국민연금을 받을 수 있다. 국민연금공단은 빠르게 진행되는 고령화 및 평균 수명의 증가와 더불어 국민의 노후 대책으로서 국민연금의 중요성이 높아지고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때 이러한 연령 조정이 불가피했다고 언급했다. 한국보다 앞서 인구 고령화를 경험하고 있는 일본도 2011년 이미 공적연금 수령 시점을 65세로 상향 조정한 바 있다.

 하지만 국민연금 수령 시기가 늦춰진 가입 당사자는 상당히 당황하는 분위기다.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이 늦춰진 반면 은퇴 연령은 앞당겨지면서 은퇴 후 소득 공백 기간은 더 확대되는 추세다.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만 65세 이상 고령자의 최종 직장 퇴직 연령은 2011년 만 54세에서 지난해 만 53세로 1년 앞당겨졌다. 만약 1969년생이 만 53세에 퇴직하게 되면 국민연금 수령 개시 연령인 65세까지 은퇴 초기 12년을 위한 생활자금 마련이 매우 절실한 상황이다.

이렇게 은퇴 후부터 연금 수급 개시 시점까지의 소득 공백기를 가리켜 ‘은퇴 크레바스’라고 한다. 보통 소득이 급격히 줄어드는 은퇴 직후의 50대 중반부터 60대 중반 사이에 이르게 되는 이 시기에는 부양 가족의 학자금, 결혼자금 등 금액이 많은 지출까지 겹치게 될 가능성이 크다. 국민연금 조사에 따르면 조기노령연금 수급을 신청한 사람은 2006년 10만 명에서 2011년 약 30만 명으로 급증했다. 이러한 현상은 조기 은퇴를 목전에 둔 사람의 소득 공백기에 대비하기 위한 노력과 무관하지 않을 것으로 생각한다. 그러나 조기노령연금은 일정비율의 감액을 감수해야만 한다. 그래서 준비된 노후 자금의 규모도 줄어들고 연금소득 의존도가 높아지는 은퇴 후반에는 더 큰 소득 부족을 초래하게 될 수 있다.

 그렇다면 은퇴 크레바스를 어떻게 대비해야 할까. 비축해놓은 자산이 많다고 해도 고정적으로 들어오던 월급이 끊기면 당장에 필요한 현금을 마련하는 데 어려움을 겪을 수 있다. 따라서 이 시기에 가장 중요한 것은 정기적인 수입, 그리고 현금화가 가능한 유동성 자금을 충분히 확보하는 것이다. 즉 안정성에 중점을 둔 자산 운용이 기본이고, 돈을 모으고 불리는 데 중점을 두는 투자 방식에서 어떻게 하면 잘 유지하면서 사용할 수 있느냐로 인식을 전환해야 한다.

 지난해부터 이런 상황을 배경으로 매월 정기적인 현금 흐름을 만들어주는 월지급식 금융상품이 각광받고 있다. 그중 대표적인 것이 ‘월지급식 펀드’다. 월지급식 펀드의 전체 설정 규모는 2009년 1011억원에 불과했으나 현재 1조4247억원(2월 15일 기준)으로 크게 증가했다. 월지급식 펀드는 목돈을 넣어두고 매월 일정한 월 분배금을 받는다는 것이 특징이다. 예를 들어 지급 비율이 연간 4% 수준인 월지급식 펀드에 1억원을 투자하면 매월 33만3000원씩 분배금을 받을 수 있다.

 월지급식 펀드에 투자할 때 유의해야 할 점도 있다. 매달 정기적인 금액을 지급하는 특성상 정기적인 수익률이 좋지 않을 경우 원금 손실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는 것이다. 많은 투자자가 월 분배율이 높게 설정된 월지급식 상품일수록 더 좋은 것이라고 생각하는데 꼭 그렇지만은 않다. 만약 펀드가 월 지급 분배율을 높게 책정한 경우 운용 성과가 월 지급 분배율보다 낮다면 원금 손실이 발생할 수 있다. 이러한 상황을 피하기 위해서는 월 분배율이 높은 상품을 찾기보다는 꾸준하고 안정적인 수익을 낼 수 있는 자산에 투자하는 상품을 택하는 것이 좋다.

 최근 국민연금이 국민 사이에서 뜨거운 감자로 떠오르고 있다. 이는 국민이 은퇴 이후의 삶에 대해 진지하게 고민하고 있으며, 그만큼 국민연금을 향한 국민의 관심과 기대가 높아지고 있다는 방증이다. 전 세계적인 인구 통계학적 현상으로 연금 수급 시점을 늦춰야 하는 것이 불가피하다면, 국민의 ‘은퇴 크레바스’를 줄이기 위한 정부와 국민의 소통과 노력이 필요할 것이다.

마이클 리드 피델리티자산운용 대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