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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끝)소 간첩 「코크로프」 망명기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4면

「코크로프」가 속해있던 MVD(비밀경찰) 제9과의 새 과장은 전에 주미대사관무관을 지낸 「파뉴스치킨」이 됐는데 이자는 취임하자마자 「코크로프」를 불러 『너는 곧 서독 「프랑크푸르트」에 가서 「오코로비치」를 없애버려라』고 명령했다. 소련망명인 「오코로비치」는 서독의 유력한 반공지도자의 하나였다. 과장은 그에게 여권·신분증명서와 암살흉기를 내주었다.
「코크로프」는 그날 밤부터 고민으로 잠을 못 잤다 .그는 드디어 MVD의 철칙을 깨뜨리고 자기아내 「헬레나」에게 자기가 MVD대위라는 것, 사람을 몇 명 암살했다는 것과 또 지금암살사명을 띠고 서독으로 가게됐다는 것을 고백했다.
MVD에서는 자기의 아내에게라도 신분을 밝히면 처형을 받는 것이다. 「헬레나」는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 한참동안 말문이 막혔다. 그녀는 한참만에 울면서 『나의 남편인 당신이 MVD의 살인간첩이라는 것은 말이 안 된다. 만일 그것이 사실이라면 당장 벗어나도록 해 주세요』라고 「코크로프」에게 호소했다.
그 당시 MVD안에도 숙청이 일어나기 시작해 소련국내가 불안하기도 하고 또 암살명령을 거역할 수도 없고 해서 「코크로프」는 1954년 2월 서독으로 왔다.
그가 서독에 온지 두 달 동안 서독지하공작원들과 치밀한 암살계획을 세웠다.
그는 이번 「오코로비치」 암살을 자기가 직접 혼자서 해버리겠다고 주장하고 그의 「아파트」에 가서 정치적 망명을 하겠다는 의사를 밝힌 것이다. 「코크로프」가 「오코로비치」와 함께 미국 점령군 정보국에 가서 모든 것을 자백 폭로한 뒤 3년 동안 그는 익명을 사용하고 미 정보국은 24시간 경호를 해주었다. 57년에 이르러 미 정보국은 「코크로프」의 신변경호를 좀 완화했는데 이것이 하나의 큰 실수였다.
그 해 9월에 「프랑크푸르트」 번화가 어떤 식당에서 저녁식사를 한 뒤 「코크로프」는 갑자기 구토설사를 했다. 곧 대학부속병원에 입원됐으나 며칠동안은 의식을 잃어버렸다. 진단의의 발표에 의하면 식당에서 독을 넣은 음식을 먹었기 때문이었다. 「코크로프」는 응급수술로 생명을 건질 수 있었다.
지금 「코크로프」와 그의 암살대상자였던 「이코로비치」는 절친한 친구가 됐을 뿐만 아니라 서독 같은 곳에서 함께 일하고있다. 그러나 그의 망명을 충고한 아내와 아들의 소식은 지금까지도 전혀 알 수 없다. <외신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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