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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리 끊기고…' 20년 채식주의자 충격 고백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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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5면

채식의 배신
리어 키스 지음
김희정 옮김, 부키
440쪽, 1만5000원

채식주의자는 물론 일반인들도 당혹스럽게 만드는 책이다. 건강을 지키고 자연을 보호하는 길이라 믿는 채식주의가 ‘자기 위안’에 불과하하다는 점을 조목조목 지적했기 때문이다.

 지은이는 유명한 환경운동가이자 농사꾼이긴 하지만 그보다도 20년 가까이 비건(vegan)으로 살았기 때문에 더욱 설득력 있다. ‘비건’이란 유제품, 달걀 등을 포함한 동물성 지방을 전혀 섭취하지 않는 철저한 채식주의자를 일컫는데 지은이는 이로 인해 척추가 내려앉고, 생리가 끊기고, 퇴행성 관절질환과 저혈당증, 우울증을 얻었다고 한다.

 체험을 바탕으로 채식주의의 도덕적·정치적·영양학적 근거를 논박한다. 다른 생명을 희생하면서까지 육식을 하고 싶지 않다는 도덕적 이유에 대해 지은이는 무지하다고 일갈한다. 예컨대 인간을 위해서가 아니라 번식을 위해 맺히는 사과를 먹는 것 역시 다른 생물의 죽음을 초래한다는 설명이다. 뿐만 아니라 채식주의자들이 온 세상 사람이 전적으로 의존해야 한다고 믿는 곡물을 재배하는 일, 즉 농업이 생태계 파괴 효과가 만만치 않다고 지적한다. 곡물 재배를 위해 북미 대륙의 목초지 98%가 사라졌고, 3.6m가 넘던 표토도 얼마 남지 않았다는 사실 등을 들어 “대륙 전체가 산 채로 껍질이 벗겨지는 이 광범위한 파괴”에 대해 채식주의자들이 눈감고 있다고 꼬집는다.

 지은이에 따르면 정치적 채식주의 역시 ‘맹신’에 바탕을 둔다. 이들은 “인간이 먹을 쇠고기 1파운드(453g)를 생산하기 위해 소에게 4.8파운드의 곡물을 먹이는 것은 낭비”라며 기아 해결책으로 채식주의를 주장한다. 이는 의도는 좋지만 곡물 생산에 필요한 비료나 파종, 수확, 가공, 운반에 화석연료(석유)가 쓰인다는 사실을 외면했기에 한계가 있다고 지은이는 지적한다. 영양학적 이유 또한 다양한 사례를 들며 ‘인류는 곡물만 섭취한 적이 없다’ ‘저지방 고탄수화물 식단은 위험하다’는 사실을 제시한다.

 인간은 먹이사슬의 꼭대기에 있는 것이 아니라 순환구조 상의 한 단계라는 것, 온갖 생명은 서로에게 빚지고 있는 것이란 지은이의 신념에는 공감이 가지만 그렇다면 도대체 어떻게 하란 말인지 혼란스러울 수밖에 없다. ‘세상을 구하는 10가지 방법’ 같은 실천 지침이 제시되지 않아 더욱 그렇다. ‘가능하면 아이를 낳지 말자’ ‘차를 더 이상 몰지 말자’ ‘자기가 먹을 음식을 직접 기르자’란 ‘그나마 효과 있는 개인적 해결책 세 가지’를 제시하는 데 그친다.

 인류 문명의 토대까지 건드리는 식량문제에 관심이 있다면 『음식의 제국』(RHK), 『이성적 낙관주의자』(김영사)를 꼭 차례로 읽어보길 권한다.

김성희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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