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DVERTISEMENT
오피니언 논쟁

자유학기제, 어떻게 봐야 하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2면

[일러스트=박용석 기자]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은 중학교 자유학기제를 공약했다. 한 학기 동안 시험 없이 다양한 체험학습을 할 수 있도록 하자는 취지에서다.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도 같은 맥락의 ‘중1 시험 폐지’를 약속했다. 하지만 교육계 안팎에서 “사교육 학기가 될 수 있다” “한 학기만이라도 공부와 시험에서 해방시켜야 한다”는 찬반이 엇갈린다. 두 갈래 목소리를 들어봤다.

◆희망자만 진로탐색 기회 갖자는 좋은 제도

정병오
좋은교사운동 대표

자유학기제는 박근혜 대통령 당선인의 핵심 교육공약이다. 그는 자유학기제의 의미를 “필기시험 없이 독서, 예체능, 진로체험 등 자치활동과 체험 중심의 교육을 통해 학생들이 창의성을 키우고, 진로탐색의 기회를 갖도록 하는 것”이라고 설명했다. 하지만 자유학기제는 그 공약을 처음 발표한 순간부터 지금까지 많은 우려와 반대에 부딪히고 있다. 반대자들도 자유학기제 도입의 필요성이나 취지에는 반대하지 않는다. 하지만 자유학기제를 실시할 수 있는 학교와 사회의 인프라가 준비되지 않았고, 학생들의 학력저하와 사교육 증가가 우려된다는 것이다. 이들의 우려는 현실성 있는 소리임에 분명하다. 하지만 이러한 우려는 자유학기제를 갑자기 전국의 한 학년 전체를 대상으로 일제히 실시한다고 할 때 타당한 우려다.

 그런데 자유학기제의 전제는 전국의 한 학년 전체가 대상이 아니라 희망하는 학생에 한해 실시하는 제도다. 잘 알려진 바와 같이 자유학기제의 모델은 아일랜드의 전환학년제다. 우리와 비슷한 과도한 입시경쟁 문제를 겪던 아일랜드는 1974년 중학교 3학년과 고등학교 1학년 사이에 1년 과정의 전환학년제를 도입했다. 다만 희망하는 학교와 학생에 한해서 실시했다. 그래서 이 제도 도입 첫해에는 전국에서 3개의 학교만 전환학년을 개설했다. 이것이 완만하게 증가해 10년째에 이르러 20개 학교가 되었고, 40년 가까이 지난 지금에야 전국의 75% 학교, 53%의 학생이 전환학년에 참여하고 있다. 그 사이에 이 제도에 대한 국민들의 인식이 확산되고 학교와 교사가 준비되고, 사회적 인프라가 많이 구축된 것은 물론이다.

 이러한 희망자 중심, 단계적 도입이라는 전제를 의도적으로 무시하고 마치 전국의 모든 학교와 학생이 동시에 실시할 것처럼 반대 여론을 몰아가는 것은 무책임하다. 더 위험한 것은 이러한 여론몰이에 밀려 시작도 하기 전에 자유학기제가 후퇴하고 있다는 것이다. 자유학기제 공약의 틀을 만들었다고 알려진 문용린 서울시 교육감은 선거기간에 자유학기제와 맥을 같이하는 중1 시험 폐지 공약을 내걸었다. 그런데 이에 대한 우려와 반대가 있자, 중1 중간고사를 보지 않고 수행평가와 기말고사만 실시하고 진로교육을 강화한 ‘중1 진로 탐색 집중 학년제’를 시범 실시하겠다고 발표했다. 중1 때 진로교육을 강화하는 것은 환영하지만 자유학기제 공약의 취지에서는 너무 멀어져 버렸다.

 지금 중·고교에는 과도한 입시경쟁의 쳇바퀴 속에서 지쳐 자아를 확립하지 못하고 아무런 꿈도 의욕도 찾지 못하고 방황하는 아이들이 너무 많다. 이들 가운데는 한 학기나 1년 정도만 공부와 시험으로부터 해방시켜 주고, 자기가 누구이고 왜 살아야 하며, 무엇을 하고 살 것인지를 탐색하고 발견하게 해주면 정말 열심히 자기 길을 걸어갈 수 있는 아이들이 많이 있다. 전체 우리 교육과정이나 입시의 틀을 건드리지 않더라도 이들을 위한 길을 열어줄 수 있는 방법은 얼마든지 있다.

 다행히도 박근혜 당선인은 최근 “과도한 경쟁과 입시 위주의 우리 교육을 학생의 소질과 끼를 일깨우는 행복교육으로 바꾸기 위해 자유학기제를 반드시 실시하겠다”고 재선언을 했다. 약속을 반드시 지킨다고 공언하는 박근혜 당선인의 공약 실천을 기대해 본다.

정 병 오 좋은교사운동 대표

◆결국 선행학습·사교육 학기로 변질될 것

안양옥
한국교총 회장
서울교대 교수

5년 전 이맘때 대통령직인수위원회의 ‘영어 공교육 강화방안’은 교육계 안팎을 떠들썩하게 했다. 영어 공교육을 실용과 회화 위주로 강화하겠다던 영어 공교육 강화방안은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현장성 적용 논란과 영어 사교육시장을 출렁이게 하는 부작용이 있었다. 5년이 지난 지금 영어 공교육 강화방안의 교육적 효과와 현장 안착 등에 대해서는 반성적인 평가와 분석이 요구된다.

 25일 출범하는 박근혜 정부의 교육정책 기조는 ‘꿈과 끼를 끌어내는 행복교육’이다. 과도한 경쟁과 입시 위주의 교육에서 학생의 소질과 끼를 일깨우는 행복교육으로 나아가야 한다는 방향성을 제시하고 있다. 특히 교육계 안팎에서 가장 큰 관심을 끄는 공약이 바로 ‘자유학기제’ 운영이다. 중학교 과정에서 한 학기 동안 진로탐색의 기회를 제공한다는 취지로 시험 위주의 강의식 교육 대신 토론·실습·체험 등 다양한 활동 중심으로 학교 교육을 진행하겠다는 내용이다. ‘진학 중심에서 진로 중심 교육’으로 변화하고, “아이들이 잘할 수 있는 것, 하고 싶은 것, 꼭 이뤘으면 하는 꿈과 자기의 소질을 끌어내고, 스스로 발견할 수 있게 해주는 교육이 돼야 한다”는 정책 취지는 바람직하다.

 그러나 자유학기제가 가진 좋은 취지에도 불구하고 학교 현장을 중심으로 일부 우려가 제기되고 있다. 첫째, 교육 특성상 연속성이 요구되는 교육과정에서 한 학기만 진로·체험 위주 교육을 강조하게 될 경우 발생할 여타 과목과의 단절성이다. 또 학생들이 지속적으로 받아야 할 진로·체험교육 자체도 중간이 비는 문제가 발생한다. 둘째, 한 학기 집중 진로·체험수업으로 교육과정 또는 수업시수 변경 등의 부담도 발생한다. 이는 학교 현장과 학생의 과도한 개혁 피로감으로 다가올 수 있다. 또 지난해 입학한 중학생부터 중1 내신 성적이 고교 입시 내신에 반영되는 만큼, 고교 입시 내신 산출에 있어 형평성 문제도 생길 수 있다. 중간고사를 보지 않음에 따라 기말고사 출제범위가 넓어져 학생에게 부담이 될 것이라는 우려 또한 가벼이 볼 수 없다. 셋째, 선행학습 혹은 사교육 학기제로 변질될 우려, 진로교육 프로그램과 인프라 부재로 진로교육이 제대로 시행되기 어려운 문제, 학습·생활지도상의 문제점 발생 우려 또한 만만치 않다.

 아일랜드에서 1974년부터 도입돼 일종의 월반제적 성격을 갖는 ‘전환학년제’를 참고할 만하다. 자유학기제 시행 학년을 초6·중3·고3 학기말로 정하자는 말이다.

 현재 기말고사가 끝나고 상급학교 진학과 입시가 마무리되는 초·중·고교 학년 말에는 수업이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있다. 이렇듯 파행수업이 이루어지는 학년 말에 교과진도나 학생수업 프로그램을 고민할 것이 아니라 이 기간을 활용해 학생들에게 진로·체험수업을 전개하면 학교의 부담 완화, 학생·학부모의 만족도 제고 등 교육적 효과성이 클 것이다. 또한 단지 중학교 한 학기에만 단절적으로 이루어지는 체험·진로교육이 초·중·고로도 이어지는 연속성을 담보하는 효과도 있다.

자유학기제가 과거 체험학습과 학습자중심 교육의 일환으로 실시되다 큰 성과를 거두지 못한 ‘자유학습의 날’과 ‘책가방 없는 날’이 되지 않고 현장에 적합한 ‘한국형 전환학년제’로 추진되길 기대한다.

안 양 옥 한국교총 회장 서울교대 교수